[한여름의 연쇄살인, 폭염] 해외 편 <4> 폭염 경보의 첨단, 캐나다
피에르 고슬린(오른쪽 두 번째) 캐나다 퀘벡 국립 공공보건연구소(INSPQ) 교수가 지난달 26일 퀘벡시티 연구소에서 한국일보 폭염 기획 특별취재팀과 만나 '수프림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퀘벡시티=김창선 PD

2010년 캐나다라면 한국인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떠올린다. ‘피겨 여신’ 김연아, ‘빙속 여제’ 이상화 등의 활약에 한국은 열광했다. 하지만 캐나다 사람들에게 2010년은 ‘유독 더웠던 한 해’였다. 2009년 12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캐나다의 1년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2.9도나 높았다. 63년 만에 찾아온 기록적인 더위에 캐나다 사람들은 적응하지 못했다.

특히 2010년 7월 4일부터 9일까지 캐나다 퀘벡주의 더위는 끔찍했다. 당시 캐나다 폭염경보 기준 기온인 ‘임계치’는 31도. 2010년 7월 폭염 기간 최고기온은 이보다 3.8도나 높은 34.8도에 달했다. 북위 46도에 위치한 퀘벡 주민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더위였다. 특히 7월 평균 습도가 71%로 높았던 탓에 체감 온도는 43도를 훌쩍 넘기 일쑤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폭염에 인명 피해도 막대했다. 2010년 기준 인구 793만명 퀘벡주에서 일주일간의 폭염으로 280명 이상이 숨졌다.

이 때 캐나다 퀘벡 국립 공공보건연구소(INSPQ)는 퀘벡 지역을 위한 최첨단 폭염 예보 체계 ‘수프림 시스템(SUPREME System)’을 시험 가동한 상태였다. 캐나다는 주별로 폭염 임계치가 다르기 때문에 주에 맞춰 별도로 기상 예보를 한다. 피에르 고슬린 공공보건연구소 교수가 설계한 이 시스템은 폭염뿐만 아니라 산불, 홍수, 도시 열섬 현상 등 여러 사회 재난을 예보하며 정부 관계 부처와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지난달 26일 한국일보 폭염기획 특별취재팀이 방문한 연구소 3층 회의실 책상엔 무선 마우스와 키보드만 놓여 있었다. 최첨단 폭염경보 시스템은 어디에 있는 걸까. 벽에 걸린 모니터에 웹페이지 하나가 떠 있었다. 수프림 시스템이었다.

◇2010년과 2018년 폭염 대처는 달랐다

지난해 퀘벡에는 2010년 이후 또다시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왔다. 연구팀은 2010년 끔찍한 폭염을 겪으며 폭염 예방에 어떤 데이터가 필요한지 제대로 학습한 상태였다. 고슬린 교수는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 데이터에 정부로부터 제공받은 데이터를 결합해 수프림 시스템에 적용했다. 연령ㆍ성별 구분은 물론 경제 수준, 심지어 에어컨 설치 여부까지 포함한 지역별 주민 특성이 담긴 데이터를 지리정보시스템(GIS)과 연계한 결과가 나왔다. 이 시스템을 통해 퀘벡주 어느 지역 주민이 폭염에 더욱 취약한지 파악할 수 있었다.

캐나다 폭염상황. 송정근 기자

지난해 퀘벡의 최고기온은 35도까지 치솟았고, 체감 온도는 46도에 육박했다. 하지만 폭염 피해는 8년 전과 달랐다. 지난해 7월 1일부터 8일까지 퀘벡을 덮친 폭염 기간 사망자는 93명, 2010년 폭염 사망자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수치였다. 고슬린 교수는 “지난해 폭염 때 수프림 시스템을 가동해 만성 질환이 있는 노년층 등 고위험군이 살고 있는 지역 위치를 파악했다. 경찰이나 소방 당국은 고위험군 지역 주민 4만2,000여명의 집을 직접 찾아 대응했다.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예보와 의료, 정책을 연계한 시스템

직접 수프림 시스템을 들여다봤다. 퀘백주의 예상 기온을 분석한 자료가 모니터에 떴다. 연구소 방문 당일인 6월 26일은 목요일, 시스템은 월요일부터 수요일 퀘벡주 퀘벡시티의 실제 기온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의 예상 기온 및 평균 기온, 퀘벡시티 폭염경보 기준 기온을 비교해서 한 줄에 표시해줬다. 폭염 경보가 발령 중인 지역과 비교해봤다. 모니터 속 퀘백주 내 다른 도시 3곳의 기온 데이터는 빨간색 배경으로 강조돼 있었다. 폭염경보를 발령했으니 관계자는 주의해서 지켜보라는 뜻이었다.

여기까지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기능이다. 다른 점은 기온 예보 이후였다. 수프림 시스템은 폭염경보를 발령한 지역의 보건정책, 의료기관, 응급체계 담당자 등에게 자동으로 문자, 전화, 이메일을 발송하고 있었다. 폭염경보가 발령 중이라는 점과 각자 역할이 무엇인지 상기시키는 내용이었다. 그 사이 기온 변화에 따른 실시간 응급실 이용 현황, 구급차 호출 건수도 집계된다. 사망자 수는 매일 자정을 기준으로 갱신된다. 정책, 의료, 응급 등 담당자들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확인하며 대응할 수 있는 이유다.

캐나다 퀘벡주 수프림시스템. 송정근 기자

지도 기반인 수프림 시스템을 통해 지역별 특성에 맞춘 대책 마련도 가능했다. 집에 에어컨이 없거나 더위를 피하기 어려운 저소득 노년층이 거주하는 집으로 경찰을 보내 그들의 안부를 파악하는 식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각 지역을 연령별, 소득수준별로 구분해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슬린 교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망자 수를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라며 “구급차 호출 건수나 응급실 이용 현황이 급증하는 것을 단서로 누군가 목숨을 잃기 전 대책을 실행시킬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최첨단 시스템 탄생 비결은 데이터 축적
캐나다 '수프림 시스템'을 통해서는 기온뿐만 아니라, 연령, 소득, 사회적 기반시설, 녹지 공간 비율 들 지역별 인구 특성을 결합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있다. 이는 효율적인 맞춤형 대책 마련으로 이어진다. 퀘벡시티=김창선 PD

9년째 가동 중인 이 시스템이 최첨단이라 불리는 비결은 데이터 덕분이다. 특히 2010년 이후 퀘벡을 위한 맞춤형 폭염 관련 데이터가 축적돼 왔다. 고슬린 교수는 “폭염 원인은 지역마다 다른데, 정부에서 각 지역,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할 때 매우 효율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제는 폭염 기간 식중독 발생 건수까지 집계되고 있다. 고슬린 교수는 “고온과 관계된 모든 자료가 매년 새롭게 쌓이고 있다. 9년 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축적된 데이터가 바로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수프림 시스템의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캐나다 환경부도 기상예보를 내리기 전 수프림 시스템과 정보가 일치하는지 검토하고 있다. 캐나다 환경부는 서면 인터뷰에서 “수프림 시스템은 지역 특성에 맞춘 실시간 예보 체계이자 감시 기능을 갖고 있다”며 “캐나다 환경부도 이와 유사한 폭염 예보 시스템을 새로 갖췄다”고 밝혔다.

◇첨단 기상시스템 구축은 정부 의지 문제

수프림 시스템은 진화 중이다. 폭염뿐만 아니라, 산불, 홍수, 혹한 등 다른 기상 재난 상황에도 쓰이고 있다. 고슬린 교수는 “최근 퀘벡주에 홍수가 발생했는데, 동네별 수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대피소 위치 및 현황을 실시간으로 안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다 근본적인 폭염 예방을 위해 도시 기온을 낮추는 프로젝트에도 이 시스템이 쓰이고 있다. 비교적 기온이 높은 공업지역 등에 녹지사업을 우선 시행하고, 주거 취약 지구의 지붕 색깔을 흰색이나 회색으로 바꿔 도시 기온을 떨어뜨리는 데 GIS가 활용되고 있다. 고슬린 교수는 “지금보다 사용자 편의에 맞게 디자인을 개선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캐나다 퀘벡주는 수프림 시스템을 통해 녹지 공간이 부족한 지역을 우선으로 녹지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중 하나는 '녹색 골목 프로젝트'로 주택가 골목을 녹지 공간으로 조성하는 내용이다. 퀘벡 시티=김창선 PD

한국에서도 수프림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고슬린 교수는 “매우 쉽다. 관건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시간”이라고 답했다. 시스템을 만든 뒤 지금까지 유지하는 비용은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도 했다. 고슬린 교수는 “데이터는 모두 무료였다. 초기 소프트웨어 개발 비용이 20만 캐나다 달러(한화 약 1억8,000만원) 들었다. 한국도 충분히 가능하다. 데이터를 제공하고 정보통신 종사자들과 협업하려는 정부 의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퀘벡시티=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김창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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