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들이 이르면 9월 전국적으로 연가(年暇) 파업을 한다고 예고했다. 간호조무사 파업은 사상 처음이다. 숙원사업이던 중앙회 설립법안 입법이 좌절된 탓이다. 간호조무사는 간병 등 간호사 보조업무를 하고 있으며, 의원급에서는 의사의 감독 하에 주사처치 등 사실상 간호사 업무를 대신하고 있어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의료현장에 혼란이 예상된다.
18일 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에 따르면 의원(83%)과 치과의원(98%) 치과병원(72%) 요양병원(54%) 간호인력 절반 이상이 간호조무사(치과위생사 3만9,000여명을 제외한 수치)다. 전국에 활동 중인 간호조무사는 18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는 대한간호협회(간협) 대표만 참석하는 등 정부 정책협의에서는 간호조무사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간무협은 중앙회를 설립해 정부와 정책을 협의하는 법정단체로 인정받는게 숙원사업이었지만 관련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은 지난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해당 법안을 발의한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지난 2월 법안 발의 이후 간무협 중앙회 설립에 대한 의원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15일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선 간호사 출신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다른 의원들 역시 소극적 태도를 취하면서 결국 해당 법안 처리가 보류됐다. 최도자 의원실 관계자는 “간협의 압박 때문인데 앞으로 다시 논의를 꺼내더라도 입법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면서 “간협은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안 심의가 보류된데 대해 전동환 간무협 기획실장은 “간호협회가 정책협의에서 간호계를 대표하고 있지만 간호조무사의 권리는 챙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간호조무사가 주로 근무하는 의원급은 근로기준법 예외조항이 적용되는 5인 이하 사업장이 많아 각종 수당과 휴가 등 권리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다”며 중앙회 설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간협은 의료법상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에게 중앙회 설립을 허용하면 앞으로 정책 결정에서 간호조무사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정부 정책에 혼란이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또 간호사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민경 간협 전문위원은 “의료법은 간호사만 의료인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노인복지법 등 29개 법령에서는 간호사를 간호조무사가 대체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예컨대 보건소에 배치되는 전문인력의 경우 간호조무사로 대체할 수 있는데 각 직역의 전문성에 맞춰 법령을 정비하지 않고 중앙회를 설립해준다면 의료현장에서 혼란이 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면허와 자격의 차이에 따라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간호조무사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단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손호준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간협의 반발을 감안해 간무협 중앙회 설립에 관한 문구를 일부 수정해 대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정치력의 열세를 절감한 간무협은 내년 총선에서 정치세력화도 추진하고 있다. 1973년 창설 이후 처음으로 총선대책본부를 조직한 간무협은, 간호조무사를 대표할 국회의원을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배출하거나, 간호조무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9월로 예정한 연가파업에는 전국에서 간호조무사 1만명이 연차휴가를 내고 국회 또는 복지부 앞에 모여 중앙회 설립을 촉구할 계획이다. 다만 노조처럼 동원력이 크지 않아 계획만큼 파업 참가자가 많을지는 미지수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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