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거부에도 “계속 중재위 요구”… 보복 경고하며 호흡조절 의도
압류재산 현금화 시점에 행동 나설 듯… 경제산업성, WTO 국제 여론전
일본 정부가 17일 한국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를 거부한 청와대의 전날 입장 발표에도 “계속 중재위에 응하도록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배상판결을 받은 자국 기업들의 압류자산이 현금화할 경우엔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의연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이 재산상 피해를 보는 상황이 닥친다면 강도 높은 카드를 한국에 내밀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는 청와대의 16일 중재위 거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첫 공식 반응으로, 이르면 연말로 예상되는 자국 기업 자산의 현금화 상황까지 가늠하면서 호흡을 조절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관방부(副)장관은 이날 정례브리핑을 열어 “한국 정부에 국제법 위반 상태의 시정을 포함한 적절한 조처를 하도록 계속 강하게 요구하면서 한일 청구권 협정상 의무인 중재에 응하도록 요구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라며 “한국 정부는 청구권 협정에 따라 7월 18일까지 (중재위 설치)요구에 응할 의무를 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재위 설치 시한인 18일 이후 일본 측 조치를 두고 전망이 분분하다. 산케이(産經)신문은 이날 일본 측이 다음 국제법상 절차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하고 있지만 당분간 서두르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전했다. 대신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 직후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이 담화 발표로 판결을 비판했듯이 국제사회에 한국의 부당함을 알리면서 자국 기업의 압류자산 현금화 상황을 따져가며 추가 대항조치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제 여론전을 펼치면서 일본 측이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명분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지(時事)통신은 일본 정부가 18일까지 기다린 다음 19일 대응책을 밝힐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그간 일본의 추가 대응책으로는 ICJ 제소나 추가 대항조치 등이 거론돼 왔다. 다만 ICJ 제소 여부와 관계 없이 ‘화이트(백색) 국가’ 제외 조치는 예정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본격 행동에 나서는 것은 일본 기업의 압류자산이 현금화하는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노 장관도 전날 “만일 일본 기업에 피해가 미치는 일이 발생하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압류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화 시엔 추가 대항조치를 시사했다. 미츠비시(三菱)중공업에 앞서 현금화 절차를 밟고 있는 일본제철과 후지코시(不二越)의 경우 이르면 연말이나 내년 초 절차가 마무리 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도 외무성 간부를 인용해 “불이익이 발생한 기업이 구제되지 않을 경우, 한국 정부에 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보도했다. 추가 대항조치와 별개로 국제법이 인정하는 외교적 보호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외교적 보호권은 자국민이나 법인이 손해를 입은 경우 상대국에 적절한 구제를 요구할 권리를 말한다.
ICJ 제소 카드를 즉각적으로 제시하지 않더라도 장기전을 염두에 둔 일본 측의 강경한 태도가 쉽게 바뀌지는 않을 전망이다. 첫 고비는 참의원 선거(21일) 이후다. 대내외적으로 ‘보복조치’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어 정부 차원의 대응 기조를 재정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근본적인 재정립 차원에서 꺼내든 조치인 만큼 참의원 선거 승리를 바탕으로 공세를 강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오는 23~2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 의제로 상정된 가운데, 경제산업성은 이날 공식 영문 트위터 계정을 통해 “일본은 안전보장상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했고, 한국은 12일 실무 협의 이후 원상 회복을 요구했다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브리핑을 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려 국제사회를 향한 여론전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이날 수출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해 한국이 24일까지 개최하자고 요청했던 추가 협의를 거부할 방침을 밝혔다고 교도(共同)통신이 보도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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