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입맛 맞춘 편집 한국여론 호도]
조국 수석 이어 고민정 대변인 “우리 국민 목소리 반영했나”
정부 비판 보수언론 겨냥 관측 “편집권에 부당 압력” 우려도
조국(오른쪽) 청와대 민정수석과 고민정(왼쪽) 대변인, 한정우 부대변인이 16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는 17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중앙일보와 조선일보의 일본어판 기사를 거론하며 “이게 진정 우리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공개 비판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조선일보는 이달 4일 ‘일본의 한국 투자 1년 새 마이너스 40%, 요즘 한국기업과 접촉도 꺼려’라는 제목의 한국어 기사를 일본어판에 실으면서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라는 제목으로 번역해 보도했다”고 문제 삼았다.

조선일보가 지난 5일 ‘나는 선 상대는 악, 외교를 도덕화하면 아무것도 해결 못 해’라는 국문 기사를 ‘도덕성과 선악의 이분법으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로, 지난 15일 ‘국채보상ㆍ동학운동 1세기 전으로 돌아간 듯한 청와대’ 기사를 ‘해결책 제시 않고 국민 반일감정에 불 붙인 청와대’로, 5월 7일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기사의 일본어판 제목을 ‘한국인은 얼마나 편협한가’로 번역해 보도한 것도 문제 사례로 꼽혔다. 중앙일보의 경우 일본어로 게재한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 정책’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내 일부 언론사는 별도의 일본어판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자사 국문 기사를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 포털 사이트 등에 게재하고 있다. 번역 과정에서 일본 현지의 반응과 클릭 수를 고려해 기사 제목에 대한 편집(번역)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일본 국민의 시각에서 제목을 단 것은 몰역사적 행위라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고 대변인은 “현재 야후재팬 인터넷 사이트 국제뉴스 면에는 중앙일보의 ‘한국은 일본을 너무 모른다’, 조선일보의 ‘수출 규제 외교장에 나와라’ ‘문통 발언 다음 날 외교가 사라진 한국’ 같은 기사와 칼럼이 인기 기사 2위, 3위에 올라 있다”면서 “많은 일본 국민들이 그런 기사를 통해 한국 여론을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무엇이 한국과 우리 국민들을 위한 일인지 답해야 한다”며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 각을 세웠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16일 페이스북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일본어판 기사 제목을 거론, “일본 내 혐한 감정 고조를 부추기는 매국적 제목”이라며 “민정수석 이전에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명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조 수석에 이어 고 대변인이 곧바로 대응에 나선 만큼,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청와대 비판이 나온 뒤 조선일보 일본어판 홈페이지에 지적된 일부 기사들이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표면적으로는 일본어판 제목을 문제 삼았지만, 결국은 한일 갈등 상황에서 정부 대응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보수 언론의 비판 기사를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기사ㆍ칼럼의 팩트 오류가 아닌 톤과 논조는 미디어 비평 영역에서 다룰 문제지, 청와대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는 “기사의 사실관계를 바로 잡거나 공개적으로 비판적 대응을 할 수는 있겠지만, 지면의 편집 방침을 정치적으로 문제 삼거나 언론에게 별도의 책임을 묻는 방식이면 곤란하다”며 “이는 언론의 편집권에 대한 부당한 압력행사로 여겨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조선일보가 이날 “참여정부 당시 민관 공동위원회는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반영됐다’고 발표했다”고 보도한 기사에 대해, “조선일보가 당시 민관공동위 보도자료 일부 내용만 왜곡ㆍ발췌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고 대변인은 “당시 민관공동위는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발표한 바 없다”며 “‘청구권협정은 양국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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