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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좋아서 사람을 무는 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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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좋아서 사람을 무는 개는 없다

입력
2019.07.20 04: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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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순식간이었다. 목줄을 하지 않은 개가 산책 중인 우리 개를 향해 맹렬히 달려오더니 눈 주위를 물었다. 달려오는 개를 보며 내가 급하게 “개 좀 잡아주세요!”라고 소리쳤지만 개의 보호자는 “괜찮아요. 우리 개는 안 물어요.”라며 느긋했다. 달려오는 개는 3, 4㎏ 정도 되어 보였다. 소형견이 물어봤자 얼마나 다치겠냐는 마음이었을까. 아픈지 끙끙거리는 개를 내가 안아 올려 살피는 동안 보호자는 죄송하다는 말만 내 뒤통수에 남기고 개와 함께 사라졌다.

이 일을 겪은 게 10여 년 전이다. 우리 개를 문 개의 보호자는 자신의 반려견의 공격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목줄이나 입마개를 하지 않고 산책을 시켰다. 10년 사이 우리 나라의 반려동물 문화나 반려견 교육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나 반려 인구가 늘어난 만큼 준비 없이 반려동물과 사는 보호자의 수도 많아져서인지, 반려견과 관련된 사건사고는 증가 추세다. 특히 개에 사람이 물리는 사고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내가 겪은 일은 개가 개를 무는 일이었지만 개가 사람을 물면 문제는 커진다.

얼마 전 개가 35개월 된 어린 아이를 문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족은 물론이고 아이가 입었을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생각하면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 전에도 여러 번 사람을 물었던 적이 있는 개라고 했다. 그런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면서 주의도 하지 않고 입마개도 채우지 않았으며 늘어나는 목줄을 했다니 보호자에게 화가 났다. 보통 이런 사건이 터지면 반려견과 사는 사람들에게 비난이 쏟아진다. 하지만 사실 이런 때 가장 많이 속상한 사람 또한 그들이다. 당장 맹견, 안락사, 입마개 등의 고약한 말이 터져 나오고 개와 함께 하는 산책도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 때문에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 물림 사고를 일으킨 보호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사람 또한 반려인이다. 개 물림 사고가 잦아진 지 벌써 오래 됐는데 왜 아직도 제대로 된 제도가 마련되지 않는 것일까. 2018년에도 개 물림 사고가 빈발하자 체고(앞발 뒤꿈치부터 목 아랫부분까지의 높이)가 40㎝ 이상인 개에게 입마개를 착용시키고, 목줄을 2m로 하는 등의 대책이 쏟아졌다. 하지만 체고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반발을 사다가 사라졌다. 맹견이라 불리는 특정 종을 규제하는 것도 큰 의미 없음이 증명되었다. 최근 사건을 일으킨 개들이 모두 맹견으로 지정된 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도 1991년 우리나라와 비슷한 맹견 사육은 법원의 허가를 받고, 입마개와 목줄을 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개 물림 사고를 줄이는데 효과가 없다는 이유로 2016년에 이 법안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사실 개 물림 사고의 예방은 견종별, 덩치별이 아니라 개체별 관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미국 UC데이비스 수의과대학에서 동물행동의학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는 김선아 수의사는 공격성 있는 개가 진료를 할 때는 일단 개에 대한 아주 많은 정보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형제 개들의 행동, 부모견의 행동, 그 동안 훈련을 받아온 과정, 과거와 현재의 병력, 현재의 환경과 그 동안의 행동에 대해서 듣고 행동을 관찰한다. 물론 건강 문제가 있는지도 확인한다. 견종과 덩치도 고려 대상이다. 한 개체의 모든 역사가 공격성 진료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목줄에 묶여 주인을 기다리는 개. 게티이미지뱅크
목줄에 묶여 주인을 기다리는 개. 게티이미지뱅크

개와 관련된 정책을 세우려면 먼저 개라는 종에 대해서 배우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 개는 어떤 존재일까? 개는 같은 견종이라고 같은 성향을 지니지 않는다. 개는 인간처럼 각자 개별적인 존재이다. 나의 다섯 인간 남매가 다 각기 성향을 가졌듯이 개도 같은 견종이고 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강아지라도 각기 다른 성향을 지닌다. 또한 개는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만 따라서 행동하는 생각 없는 기계도 아니다. 이는 진화론과 수많은 연구가 증명하고 있다. 개가 각자의 서사를 지닌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개 물림 사고의 예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개의 개체별 관리는 보호자의 몫이다. 반려견이 공격성을 띠지 않도록 기본 교육을 시키고, 유전적 이유든 환경적 이유든 공격성을 갖게 되었다면 치료에 최선을 다하고, 입마개를 하고 목줄을 짧게 하고, 산책을 줄이는 등 개 물림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에 합당한 경제적ㆍ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김선아 수의사는 미국에서 지난 2년간 개를 진료한 사안의 85%가 공격성 문제와 관련됐다고 했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보호자들이 먼저 개 물림 사고를 예방하려고 병원을 찾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 개가 사람을 물었을 때 피해자에게 보상해야 하는 금액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보호자들이 먼저 개 물림 사고를 막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방어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 개 물림 사고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징역 2년에 벌금 2,000만원까지 가능하도록 동물보호법이 개정됐지만, 제대로 적용된 경우가 거의 없다. 반면 미국은 개 물림 사건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주에서 관련법의 적용을 받아 개의 보호자가 모든 책임을 지고 피해자는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개 물림 사고의 해결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개ㆍ보호자,ㆍ일반인에 대한 사고 예방 교육 강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호자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다. 중요한 것은 보호자가 아닌 개에게 개 물림 사고의 책임을 묻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개가 어린아이를 무는 이번 사고 후 유명 훈련사인 강형욱 씨가 아이를 문 개에 대해서 안락사 주장을 했다. 방어적 공격성이 아니고, 아이가 두 명 있었는데 더 작은 아이를 물었고, 분명 이후에 또 아이를 ‘사냥’할 거라서 안락사가 맞다고 했다. 보호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경고성 발언이라고 감안해도 부적절했다. 소리도 나오지 않는 흐릿한 짧은 영상을 보고서 그런 단정적인 주장을 하다니. 하지만 이미 그가 한 말을 정답이라 생각하는 팬덤이 형성되어 있어 이 말의 파급력은 컸다. 안락사에 거부감을 보이는 사람들과, 전문가가 안락사가 맞다고 하는데 왜 토를 다냐는 사람들의 싸움이 바로 시작됐다.

물론 공격성이 심한 개의 경우 안락사가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지난하고 복잡한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게다가 ‘사냥’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인해, 짧게는 4만 년 길게는 10만 년 동안 인간과 공진화한 개는 순식간에 반려동물에서 야생동물로 자리가 옮겨졌다.

반려동물과 아기를 잘 키우는 법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미국 단체 FPPE(Family Paws Parent Education)는 아기와 개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개가 아이를 특별한 존재로 볼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있지만 사실 개에게 아이는 소리, 냄새, 행동이 다른 존재일 뿐이고 집안의 가구나 옆의 고양이나 다르지 않다. 개는 아이를 어리고 연약한 존재라고 얕보지도, 보호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아마도 이번에 아이를 문 사건의 개를 진료해 보면 그 또래 아이와 어떤 스토리가 있었을 것이다. 어떤 순간이 개에게 정신적인 손상을 입히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오랜 시간이 걸려서라도 알아내야 한다.

“개는 개다. 개는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며, 보고 싶은 대로 보아서는 안 된다.“ 30년 넘게 동물행동학을 공부하고 가르친 미 콜로라도대 명예교수인 마크 베코프의 말이다. 인간은 같은 인간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개는 오죽할까. 이러다보니 개에게 인간은 생명줄이다.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죽여도 되는 게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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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동물복지 5개년 종합계획을 보니 반려견의 개 물림 사건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반려견과 보호자에 대한 교육 강화와 보호자의 의무 강화가 포함되었다. 그런데 개의 공격성에 대한 부분은 우려가 된다.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공격성 평가를 해서 안락사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다. 실제로 단순하고 획일적인 공격성 평가가 얼마나 의미 없는지, 이미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그중 2016년의 한 논문에 따르면 보호소에서 공격성이 있다고 판단된 개들 중에서 입양 간 뒤에 실제 공격성을 보인 확률은 25% 미만이었다. 이 정도면 공격성 테스트의 정확도가 동전 던지기만도 못하다는 것인데 어설픈 테스트를 만들어서 ‘공격성 있는 개’라는 낙인을 찍은 후 쉽게 안락사 시키는 제도를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좋아서 사람을 무는 개는 없다. 항상 긴장한 상태로 있다가 무는 행동을 하는 개들의 삶의 질은 현저히 낮다. 그래서 공격성이 있는 개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 또한 학대이다. 개가 인간, 다른 개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또한 반려인과 이 사회의 의무임을 잊으면 안 된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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