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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폭행 피해자 범죄피해자센터 갔더니, “다른 데서 요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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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폭행 피해자 범죄피해자센터 갔더니, “다른 데서 요청하세요”

입력
2019.07.18 04:40
수정
2019.07.18 14:0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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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자지원센터 홈페이지 캡처
범죄피해자지원센터 홈페이지 캡처

“저희가 심사를 해봤는데, 우리 쪽 말고 다른 곳에 지원을 요청하세요.”

10여 차례 통화 끝에 두 달 만에 겨우 걸려온 전화였는데 결론은 결국 ‘지원 불가’였다. 김준원(53ㆍ가명)씨는 크게 낙담했다. 지체장애인인데다 기초생활수급자라 형편이 어렵다 보니 지원금 한 푼이 아쉬워서만은 아니었다. 두 달 전, 지원을 요청할 때부터 자기가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사정사정을 해야 해서다. 범죄 피해자들을 보살펴주겠다던 법무부 산하 범죄피해자센터 이야기다.

김씨 사연은 지난 4월 1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씨는 장애가 있어 경기 파주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다. 이날 사람 만날 일 때문에 오랜만에 서울 용산에 갔다. 거기서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김씨를 둔기로 때린 것. 그 자리에서 기절한 김씨는 응급실에서 머리를 열 바늘 넘게 꿰맸고, 전치 3주 진단을 받았다. 이틀 뒤 용산경찰서 피해자보호담당관은 센터를 소개해줬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김씨 같은 사람을 위해 치료비 등을 지원한다 했다.

센터에 연락하자 센터 제휴 병원 아니면 집 근처 병원 중 한 곳에 입원하라 했다. 당연히 집 근처 병원을 택했다. 곧 ‘한국피해자지원협회’라는 곳에서 찾아왔다. 용산경찰서에서 김씨 사연을 알린 것이다. 센터가 연간 35억원의 국가예산을 지원받아 전국의 각 지방검찰청 별로 설치된 기관이라면, 협회는 정부 지원 없는 민간단체다. 공적인 성격을 따지자면 센터가 먼저지만, 지원은 협회가 앞섰다. 김씨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 긴급생계비 명목으로 40만원을 내놨다. 적은 돈이지만 요긴했다. 그러면서 “병원비는 센터에서 지원할 테니 걱정 말라”고 다독여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센터는 달랐다. 김씨가 입원한 병원은 건강보험적용을 거부했다. 병이 아닌 폭행은 건보 적용대상이 아니지만, 건보공단이 승인하면 예외로 적용된다. 병원들은 피해자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병원비를 떼일 까봐 미적대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센터 측에다 지원을 거듭 요청했지만, 센터의 반응은 매몰찼다. 센터 관계자는 반말로 “협회에서 지원해준다메”라고 빈정대는가 하면, “애초 센터 제휴 병원에 갔으면 문제 없었을 것”이라며 되레 김씨 탓을 하기도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수정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개요_신동준 기자/2019-07-17(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수정 범죄피해자지원센터 개요_신동준 기자/2019-07-17(한국일보)

어쩔 수 없이 김씨는 우선 친구에게 빌려 병원비 120여만원을 내고 퇴원했다. 이후에라도 지원금을 받기 위해 센터가 요구한 서류를 챙겨 보내고, 결과가 어떻게 됐느냐 몇 번을 전화 걸어 다시 묻기도 했지만 결론은 ‘심의 결과 지원 불가’였다. 김씨는 “거부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협회 쪽에서 돈 받으란 말만 반복해 너무 상처받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센터의 고질적 문제점이라 지적했다. ‘범죄 피해자 지원’을 내걸었는데 피해자 입장을 세심하게 살펴보기보다 공짜로 돈 타먹는 사람 취급을 한다는 얘기다. 안민숙 피해자지원협회 사무국장은 “범죄 피해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에게 건보 적용을 요청하라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며 “이런 고압적 태도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이 치료비 문제로 발을 동동 구른다”고 꼬집었다. 센터가 정부 지원을 받는데 정작 피해자 지원에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보 7월 8일자 1면 범죄피해자 지원기금 74%가 운영비로 샌다)

김씨 사례를 맡았던 센터 관계자는 그제서야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 김씨가 협회에서 받은 건 ‘긴급 생계비’니까 우리가 치료비 중 일부를 지급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곧 이런 사실을 김씨에게 알려주겠다”고 말했다. 반말 등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시인했다.

이제야 치료비 일부를 줘봐야 김씨도 흔쾌할 리 없다. “묻지마 범죄에 당한 것도 황당한데, 센터까지…” 할 말을 삼킨 김씨는 쓴웃음만 지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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