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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로마의 판테온과 우리의 석굴암

입력
2019.07.18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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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토함산 석굴암 내 본존 석가모니불. 석굴암은 1997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북 경주시 토함산 석굴암 내 본존 석가모니불. 석굴암은 1997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는 미술사학과에서 고건축을 전공한 사람이다. 이런 내게 로마가 준 가장 인상 깊은 건물은 단연 판테온이다.

보통 로마 건축의 백미로 꼽는 것은 플라비우스 원형 극장, 즉 콜로세움이다. 1세기 후반에 복합 아치 구조의 거대하고 균형 잡힌 아름다운 선의 건축물이 제작됐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이때 벌써 차양막 같은 관객에 대한 배려가 존재했다는 것은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또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콜로세움에는 물을 채우고 배를 띄워 모의 해전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2000년에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CG로 복원된 화려한 모습이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2세기 초의 건축으로 모든 신을 모신 성소인 판테온, 즉 만신전을 더 사랑한다. 판테온은 앞쪽은 사각형이고 뒤쪽은 원형의 전방후원(前方後圓) 구조를 기본으로, 중앙의 거대한 돔 아래에는 직경 43.3m의 원형 공간이 구현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 천장에서 빛이 들어오도록 뚫려 있는 원형창, 즉 ‘커다란 눈’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배치된 사각형 디자인은 높은 상승감과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이 거대한 돔의 재료가 인장력이 약한 콘크리트라는 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돔은 기둥 없이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인류가 발견해 낸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방식이다. 그러나 기둥이 없다는 것은 동시에 돔의 하중을 견뎌내기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즉 돔의 지름이 커질수록 더 큰 난제에 봉착하는 셈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로마인은 가벼운 콘크리트를 사용했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돔의 두께를 조절하며 여기에 디자인을 가미해 방사형의 홈까지 판 것이다.

어떻게 2세기 초에 이런 건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또 기초공사가 얼마나 완전하고 설계의 수학적 계산이 치밀했으면, 콘크리트로 된 돔이 1900년을 견뎌 낼 수 있었을까? 돔은 힘의 균형이 일부만 어그러져도 전체가 붕괴되며, 더구나 판테온의 돔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말이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그저 경탄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이 판테온과 유사한 구조의 세계적 위상을 가진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하나 더 있다. 그것은 8세기 통일신라의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석굴암이다. 석굴암 역시 전방후원 형태의 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판테온의 천장 구멍은 석굴암에서는 연꽃 문양의 천판(天板)으로 마감되어 있으며, 그 주변은 연잎과 돌 못으로 이루어진 방사형 장식이 갖추어져 있다. 규모는 작지만, 능히 판테온의 숭고한 미감에 비견되는 멋들어진 신품(神品)의 면모가 존재하는 불교예술의 정수인 것이다.

판테온과 석굴암의 가장 큰 차이는 본존상의 유무다. 현존하는 판테온 중앙에는 본존이 없다. 천장에 원형의 채광창이 있으니 과거에도 본존이 있었을 개연성은 낮다. 비가 오면 채광창을 통해서 중앙에 빗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판테온에 군중이 운집하면, 체열의 상승 작용으로 인해 빗줄기가 채광창을 비껴가는 과학의 이적(異蹟)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석굴암의 압권은 단연 본존인 석가모니불이다. 이런 점에서 판테온과 석굴암은 예배자의 시선 처리와 종교적인 집중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석굴암 본존불은 거대해서 입구로는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본존불을 먼저 모시고 외관을 완성했다는 의미다. 즉 석굴암에서 핵심은 예배 대상인 본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판테온과 석굴암은 같고도 다르다. 그러나 실크로드로 연결되는 동서 문명의 서단과 동단에 전방후원의 돔형이라는 같은 구조의 건축물이 존재한다는 것은 퍽이나 인상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실크로드라는 인류 최고의 교역로에 의해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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