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성능에 대한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달부터 시행된 의무 보증보험 제도가 업계 간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다. 벌써부터 제도 취지를 퇴색시키는 대체 입법이 추진되면서 정작 중요한 소비자 보호 논의는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중고차 매매시장, 보험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모든 자동차 성능점검업체는 ‘자동차 성능ㆍ상태점검 책임보험’(이하 성능점검 보증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재작년 10월 개정된 자동차관리법에 근거 조항이 마련돼 1년 8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쳤다. 이번 제도 시행으로 보험 가입 업체에서 점검 받은 차량을 구매한 고객은 매입 후 30일 이내 또는 주행거리 2,000㎞ 이내에 고지되지 않은 하자로 인한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사에 청구해 수리비 등을 보상 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중고차 매매를 둘러싼 부실ㆍ허위 점검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다. 성능점검업체는 중고차 매매업체의 의뢰를 받아 성능점검기록부를 작성하는데, 이를 근거로 소비자는 차량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고 매매업체는 판매액을 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전에는 부실 점검에 따른 소비자 손해가 발생해도 성능점검업체가 아닌 매매업체가 배상 책임을 지는 데다가 성능점검업체가 매매업체로부터 점검수수료를 받는 구조이다 보니, 매매업체 요구에 따라 형식적인 점검이 이뤄지는 일이 적지 않았고 이는 중고차 매매시장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성능점검업체가 의무 보증보험에 가입해 소비자 배상 책임을 직접 지도록 한 것이 이번 제도의 취지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매매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하며 무력화 투쟁에 나섰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연합회)는 국회 앞 대규모 집회(지난달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국민감사청구 등 다방면으로 제도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매매업계는 성능점검 보증보험제가 실효성이 없으며 결국 보험료 추가 부담만 매매업계가 떠안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종전에도 매매업체가 별도의 이행보증보험에 의무 가입해 매매 후 30일 또는 주행거리 2,000㎞ 이내의 하자 사고를 보상해온 만큼, 새로운 의무보험제 도입으로 소비자가 혜택을 보는 게 없다는 논리다. 지해성 연합회 사무국장은 “실제 보상 사례는 전체 중고차 거래의 1~2% 정도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대부분 신속하게 보상 처리된다”고 말했다.
반면 성능점검업계는 대체로 제도 시행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실질적인 보상 책임을 지고 보험료를 물어야 하는 쪽은 우리 업계”라며 “매매업계의 반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시장에선 새 의무보험제 도입에 따른 업계 간 위상 변화가 양측 대립의 근본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성능점검업계는 그동안 매매업체와 점검업체 간에 ‘갑을관계’가 형성돼 제대로 된 점검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성능점검업계 관계자는 “매매업자가 자신이 책임 지겠다며 큰 이상이 없으면 불량 요소를 기재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의뢰를 받는 점검업체 입장에선 형식적인 점검을 하기 쉽다”며 “매매업계의 반발은 중고차를 쉽게 팔아온 기존 관행을 유지하려는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매매업체와의 종속 관계에서 벗어나면 현재 1만~3만원대에 그치고 있는 점검비를 올릴 수 있다는 성능점검업계의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양측의 이해가 충돌하는 가운데 입법의 원래 취지였던 소비자 보호는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다. 특히 제도 도입의 근거가 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입법을 주도한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실은 최근 각 업계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는데, 성능점검 보증보험을 의무보험이 아닌 가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임의보험으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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