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에 세월을 안고 사는 주목.

나무들은 참 대단하다 싶습니다. 지구상에 알려진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 가운데 가장 크게 자라는 존재는 나무가 아닐까 싶습니다. 캘리포니아 해안의 자이언트 세코이야는 100m가 넘게 자라니까요. 수명으로 보아도 1,000년을 넘게 산다는 물곰이라는 바다생물도 있지만 가장 오래 사는 생명은 수천년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브리스톨파인을 비롯한 나무들입니다. 이토록 대단한 존재들인데도 저렇게 말없이 푸르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태백산 주목군락.

주목도 은행나무 등과 함께 오래 사는 나무의 하나입니다. 흔히 주목을 두고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고 합니다. 1,000년씩 오래 살고, 죽은 다음에 그 목재가 1,000년씩 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한동안 주목은 기념식수를 하는 대표적인 나무이기도 했는데 아마 100년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오래도록 그 어떤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열 배를 넘게 사는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갈수록 자라서 기념하는 뜻이 더 풍성하게 펼쳐지니 말입니다.

주목의 잎과 열매.

주목이라는 이름은 붉을 주(朱), 나무 목(木)자를 써서 붉은색 나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속까지 붉은 나무이지요. 게다가 햇볕을 효과적으로 흡수 할 수 있도록 진한 녹색의 잎새 덕분에 무게있고 매우 강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주목의 삶에도 많은 굴곡이 있습니다. 오래 전 우리의 큰 주목들은 우아한 빛깔은 물론 조직이 치밀하며 흑백의 바둑돌을 둘 때마다 표면이 살짝 들어가는 듯 탄력 있게 튕겨 나오는 느낌으로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고가의 바둑판으로 수난을 당했다고 합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중세 유럽의 주목들은 천천히 자라 놀랍도록 단단하면서도 유연하여 활을 만드는 최고의 재료였기에 전쟁을 위해 사라져갔다고 합니다. 와중에 살아남은 오래된 유럽주목들도 있는데 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동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교회같은 곳의 울타리로 심어져 함부로 벨 수 없는 덕분이라고 하네요.

소백산 주목.

이 독성은 다시 주목 인생의 반전을 가져옵니다. 1960년대 과학자들이 미국 태평양해안의 주목에 항암성분이 있음을 밝혀내고 1992년 항암치료제 승인을 받게 되었습니다. 화살과 독으로 죽음과 연관 지어지던 두려운 나무가 생명의 나무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항암제를 만들기 위해 더디 자라는 나무를 수없이 베어야 하자, 이번엔 환경보호자들이 강렬하게 반대하여 주춤거리게 되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나무를 베지 않고 종자부분에 더 많은 성분이 있음을 찾아내고 이를 생명공학기술로 배양하여 항암제를 만드는 성과를 얻어내었습니다.

주목의 수피.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주목의 삶도 상황이 많이 바뀌었는데, 벌채의 위협에서 벗어나 오래 살아남은 소백산 주목군락은 천연기념물로 지정을 받고 곳곳의 노거수들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한동안 보호를 받고 있었으나 이제는 기후변화가 고산의 주목들에게 걱정을 주고 있습니다.

1,000년을 사는 주목의 불과 수십, 수백년의 흔적들만 보아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합니다. 주목은 1,000년을 살고 보니 눈앞의 독은 약이 되고 당장의 유용함은 결국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고, 눈앞의 이익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지식이나 신념으로 세상을 편을 가르고 갈등으로 몰고가 스스로 행복을 잃어가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에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