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류효진 기자

애초에는 문재인 정부에 쓴 소리를 할 참이었다. 국방부에서 병역특례제도를 축소한다길래 재고해 달라는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 그러나 일본 아베 총리의 계속되는 도발에 마음을 바꿨다.

아베의 이번 수출규제 출발점은 과거사였다. 우리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판결과 문재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아베가 기댄 뿌리는 1965년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이었다. 그때도 일본은 식민지배의 부당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미화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귀결은 그 시절로의 회귀이다. 패망 전 군국주의 일본의 부활은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를 외조부로 두었던 아베 총리 집안의 가업이기도 하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일본의 아베 정권보다 우리 정부를 비난하는 여론이 꽤 있었다. 대체로 아마추어 정부의 안이하고 감정적인 대응이 화를 자초했다는 자칭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경제인들은 경제현실을 잘 모른다는 아마추어리즘을, 공학자들은 한일 기술격차를 잘 모른다는 아마추어리즘을 비난한다. 아직은 일본에 맞설 때가 아니니 좀 억울하더라도 참고 기다리며 힘을 기르자는 훈계도 빠지지 않았다. 구한말 조선에서 가장 많이 배운 전문가들이 앞장서서 나라를 팔아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정부의 책임을 물으려면 피해 당사자와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일본과 합의한 박근혜 정부, 그리고 일본의 식민지배의 불법 부당함을 인정받지 못하고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 선대의 박정희 정부의 잘잘못부터 먼저 따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세상 모든 일 중에서 자기 전공분야를 가장 우선에 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부심을 가지는 건 좋은 일이나, 자만심과 이기주의로 빠지면 비극이 시작된다. 지금 반도체가 어려우니까, 기술격차를 단숨에 따라잡지 못하니까, 앞으로도 더 많은 규제가 가해질 테니까, 그걸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결국 미국도 일본 편을 들 테니까, 그러니까 대체 어쩌자는 걸까? 아베의 주장을 받아들여 과거사 문제를 다시 되돌려야 하나? 대법원 판결을 억지로라도 무효로 만들라는 건가, 유일하게 살아있는 징용피해자에게 오히려 왜 소송을 했냐고 책임이라도 물으라는 건가, 아니면 위안부 합의를 박근혜 시절로 다시 되돌리라는 건가?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반도체 산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국민들의 인권이나 억울함 정도는 모른 체 해야 한다는 말이다. 조국근대화를 위해서는 일제 식민 지배를 받아들여야 하고,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고,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잠시 잊어야 한다는 지긋지긋한 논리가 아직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지난 촛불정신을 벌써 다 잊은 걸까? 그런 나라라면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반도체 종사자들의 인권도 손쉽게 짓밟을 수 있다. 대체 왜 우리는 반도체 산업을 일으킨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던져보자. 그게 일본의 식민 지배가 정당했다고 우리 스스로가 인정해줄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지식인의 사회적인 책무는 강자에 맞서 약자의 편에서 정의를 옹호하는 일이다. 까닭 없이 생트집을 잡고 약자를 괴롭히면 가해자의 부당함을 지적해야지 덮어놓고 강자의 편에 서서 약자에게 “네가 힘이 없는 게 잘못”이라고 야단쳐서야 되겠나. 이는 마치 매 맞는 아내에게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는 거라고 꾸짖는 행패와 다를 바 없다.

이들의 논리는 수구언론과 만나 증폭된다. 가장 애국적이어야 할 것 같은 이름을 가진 신문사가 가장 앞장서서 아베의 일본도가 되어 우리 등에 내리꽂히고 있다. 민초들은 지금 맨몸으로 그 칼날을 기꺼이 맞겠다고 스스로 떨쳐나섰다. 세계 민주주의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평화롭게 촛불혁명을 완수한 바로 그 사람들이다. 일본이 과학기술은 앞섰을지 모르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시아 최고이다. 65년 체제가 작동하는 전제조건은 남한의 친일정권이다. 친일정권은 대대로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남북간 극한의 대결로 한반도의 긴장과 갈등을 고조시켜왔다. 한반도의 불행이 곧 일본의 행복이었음은 지난 세기의 역사가 증명한다. 그 구도에 파탄을 낸 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쟁취한 우리 국민들이었다. 게다가 한반도의 냉전질서도 이제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아베는 이런 현실이 무척 싫었을 것이다. 일본의 야욕에 맞서는 근본 방책은 현란한 외교나 냉정함을 빙자한 굴복이 아니라 힘겹게 쟁취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의 새 길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나도 “거 봐라, 기초과학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21세기에 국방을 군인으로만 하려 하느냐, 전문연구요원 축소 안 된다,”라는 식으로 숟가락을 얹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당분간은 잠시 접어두려 한다. 지금은 가장 적극적으로 ‘어용지식인’ 노릇을 하고 싶다.

힘내라, 문재인 정부! 당신들 뒤에는 세상에서 가장 슬기로운 국민들이 있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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