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진입한 중미 이민자들이 지난 4월 23일 '야수'로 불리는 긴 화물열차 꼭대기에 올라탄 채 남부 오악사카주(州) 익스테펙을 출발, 미국 국경으로 이동하고 있다.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5일(현지시간) 멕시코 국경 등을 경유해 들어오는 대부분의 이민자들에게 망명 자격을 주지 않는 더 엄격한 새 규정을 발표했다.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 3개국으로 대표되는 중미 이민자 행렬 ‘캐러밴’들이 앞서 경유해 온 국가에 망명신청을 먼저 하도록 한 것인데, 사실상 캐러밴의 망명 신청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결정과 다름 없다는 게 미 언론들의 평가다.

이날 로이터ㆍAFP통신 등에 따르면, 미 법무부와 국토안보부는 이날 공동 성명을 통해 중미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을 대폭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IFR)을 발표했다. 의회에서 강화된 이민법이 통과되지 못하자, 행정부 차원에서 망명 신청자들의 자격을 재정의해 불법 이민자들의 미국 유입을 제한하려는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지난 8일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에지필드의 한 연방 교도소에 방문한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기자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에지필드=AP 연합뉴스

윌리엄 바 미 법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미국은 관대한 국가이지만, 남쪽 국경의 수십만 명 외국인을 체포하고 처리하는 부담으로 완전히 압도당한 상태"라며 "새로운 규정이 시행되면,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 망명 시스템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빈 매컬리넌 국토안보부 장관대행도 "미국으로의 이민을 촉발하는 중요한 요인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새 규정은 이민자들이 그동안 미국에 도달하기 전에 거쳐 온 국가들에 망명자 보호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 미국에도 망명 신청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즉 미국 땅을 밟기에 앞서 멕시코 등 제3국에 먼저 망명 신청을 해야 하도록 한 것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경우 제한 대상이 된다.

이 규칙의 주요 적용 대상은 중남미 등지에서 멕시코를 거쳐 남부 국경으로 들어와 미국에 망명을 신청하는 수십만명의 '캐러밴'이다. 미국 망명 신청 자격이 없는 이들은 멕시코 등 제3국으로 피신해야 한다. 다만 자신이 고문이나 박해의 피해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망명 자격이 부여된다.

중미 이민자 한 명이 지난 4월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 피히히아판 외곽을 지나던 중 멕시코 이민청 요원들에게 체포돼 끌려가고 있다. 멕시코시티=AP 연합뉴스

한편 미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중미 국가들에게 큰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과테말라와 멕시코에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으나, 두 나라는 이에 반발했다. 지미 모랄레스 과테말라 대통령은 예정돼 있던 방미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멕시코 측은 미국의 이번 조치로 멕시코가 안전한 제3국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무장관은 "멕시코가 사실상 안전한 제3국이 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미 CNN방송은 "미국의 망명 시스템을 강화하는 이번 규정이 시행되면 멕시코 국경을 통한 이민자 유입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법정 공방도 예상된다. 현행 법률은 난민이 어떤 방식으로 미국에 도착하든 망명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이번 조치는 미국 국내법과 국제법에 모두 저촉하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곧바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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