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성범죄자 전자발찌. 한국일보 자료사진

“보여? 나 이런 사람이야!”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의 한 상점에 난입한 임모씨는 가게를 보고 있던 A(51)씨 앞에 다가서더니 대뜸 자신의 한쪽 다리를 내밀었다. 걷어 올린 바지 밑단 아래로 드러난 것은 다름 아닌 전자발찌.

한마디로 ‘나 건드리면 재미없다’는 경고였다. 임씨는 발목에 찬 전자발찌가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양, 주변 가게마다 발목을 이리저리 내돌리며 협박을 일삼았다. 분식집 여주인 B(50)씨에게는 “님도 보고 뽕도 따자”고 운운하기도 했다.

임씨는 1년 전 강제추행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사람. 상가를 어슬렁대며 주민들을 협박해댄 건 그로 인해 교도소에 들어갔다 나온 지 딱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상인들의 신고로 임씨는 다시 붙잡혔고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박구원 기자

전자발찌가 성범죄자의 범죄를 억제하지 못하는 걸 넘어, 성범죄를 저지르는 데 오히려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0일 광주에서 50대 여성과 8살 딸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선모(51)씨 사건 이후, 최근 3년간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건을 살펴봤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 상태에서 또다시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2016년 58명에서 2018년(10월 기준) 67명으로 점점 늘고 있다. 그 결과 전자발찌가 공갈이나 협박 수단으로 쓰이는 사례가 오히려 더 도드라졌다. 전자발찌만 채워뒀다 뿐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풀이된다.

가령 특수강간 등 전과로 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정모씨는 2016년 9월 미성년자인 C(17)양을 성폭행했다. 그때 협박 수단이 전자발찌였다. 채팅 앱을 통해 C양을 만난 정씨는 C양이 더 이상 만나려 하지 않자 전자발찌를 가리키며 “널 아무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정씨는 겁에 질린 C양을 3일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성폭행했다. 2017년 9월 50대 여성을 성폭행한 황모씨는 피해자의 112 신고를 막기 위해 전자발찌를 내보였다. 신고하려다가 험한 꼴 당할 줄 알라는 얘기였다. 황씨 또한 정씨처럼 이미 여러 차례 이런저런 성범죄로 처벌받은 적이 있었다.

지난 12일 광주서부경찰서를 나서고 있는 선모(51)씨. 선씨는 전자발찌를 차고 있는 상태에서 가정집에 침입, 모녀를 성폭행하려다 붙잡혔다. 광주=연합뉴스

전자발찌는 조폭의 문신이나 흉터 못지않게 강력한 협박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전자발찌를 하고 있다는 건 성범죄, 살인, 유괴, 강도 등 흉악범죄를 저질렀다는 의미”라며 “단순 전과자가 아니라 강력범이었다는 인상 자체가 피해자를 무력화한다”고 지적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피해자 저항을 무너뜨리는 방법 중 하나가 강력한 범죄 증거를 협박 수단으로 내세우는 것”이라며 “그럴 경우 애써 폭언이나 협박을 하지 않아도 일단 상대를 제압하고 들어가는 셈”이라 말했다.

관건은 사후 관리다. 전자발찌에는 위치추적 기능만 있다. 전자발찌 착용자의 범죄가 사회문제화되자 법무부는 음주측정 기능을 넣을 예정이다. 착용자가 흘리는 땀을 이용해 측정토록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예방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예방을 위해선 면담이 자주 이뤄져야 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금 현재 전자발찌 착용자 수는 전국적으로 3,057명이지만 담당자는 192명에 그쳤다. 1인당 16명을 관리하는 셈인데, 세세한 면담을 통한 엄격한 관리에 다소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담당자가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착용자를 면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1인당 관리 대상자 수를 7명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다.

강력한 처벌도 필요하다. 이 교수는 “전자발찌 착용자가 필수 의무 사항을 위반했을 경우 금고형 이상으로 무겁게 처벌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영국은 성범죄자들을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한 면담을 주기적으로 해서 준수사항 위반 여부를 확인한다”며 “위반사항이 나오면 곧바로 구금 시설로 격리해 교화 프로그램을 이수토록 하는데, 우리도 이런 시스템 도입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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