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 조롱 받은 고종의 칭제건원(稱帝建元)
반일감정에 기댄 정치가 한일 관계 왜곡
감정ㆍ명분 아닌 국익 관점에서 접근해야
이순신 장군은 싸워야 할 때와 피해야 할 때를 잘 알았던 지략가였다. 40세의 야당 대변인 김대중은 1964년 야당과 지식인사회가 한일협정 반대투쟁에 나섰을 때, ‘사쿠라’ 소리를 들으면서도 국교 정상화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토대로 국익의 관점에서 한일 관계를 풀어가야 한다. ‘정부 무능이 부른 참사’라는 정략적 접근이나 ‘항일의 죽창을 들자’는 선동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 한 마트 직원이 일본 맥주를 진열대에서 빼내 반품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대 외교의 상징이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이 들어선 1897년 11월 20일. “독립을 하면 미국과 같이 세계에 부강한 나라가 될 터이요”라고 연설했던 이는 매국노 이완용이다. 그는 독립문 현판석 글씨를 썼고 가장 많은 건립 성금도 내놓았다. 청(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던 그의 독립 열망이 실은 친일을 위한 포석이었음이 확인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앞서 같은 해 10월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했다. 광무(光武)라는 연호도 정했다.

고종이 선포한 자주독립국가는 착각이었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청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한다’고 못 박았다. 청을 몰아내려 조선 독립을 강조했을 뿐이라는 걸 우리만 몰랐다. 이후 한일합방 시나리오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한제국은 1905년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1910년 국권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니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청이 고종의 칭제건원(稱帝建元)을 망자존대(妄自尊大ㆍ분별 없이 함부로 잘난 체함)라고 조롱한 것도 이해가 간다.

참여정부의 동북아균형자론도 무시당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힌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잡고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문제의 주체가 되겠다는 극히 상식적 얘기였으나, 탈미 자주화 노선으로 해석돼 주변국과 보수층의 거센 반발을 샀다. “한국은 조정 역할을 할 힘이 없다”는 조롱이 넘쳐났다. 힘이 있어야 균형자 역할이 가능한데, 중국 일본 등 주변국이 경제력, 군사력에서 한국을 압도한다는 것이었다.

미국 외교전략가 브레진스키는 “과거의 제국은 속방(屬邦ㆍ종속국)과 조공국 등으로 이뤄지는 서열 구조에 기초했고, 시대착오적 용어이긴 하나 오늘날 미국의 궤도 안에 든 국가를 묘사하는데 전혀 부적합하다고만은 볼 수 없다”고 했다. 한국은 미국의 속방, 일본은 조공국이라는 얘기다. 미국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이다. 국제 정치 질서는 정의롭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미국이 만드는 게 곧 국제 질서다. 남북 문제에서 냉엄한 힘의 논리를 수없이 목도하지 않았던가.

중국은 근 30년 동안 용의 발톱을 숨겨 왔다. 소련 붕괴 후 중국이 미국의 새로운 적으로 상정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덩샤오핑은 1992년 도광양회(韜光養晦ㆍ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림) 등 대외 원칙을 담은 ‘28자 방침’을 제시했다. 중국 국력이 미국과 대등해질 때까지 낮은 자세로 실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강대국이 된 자신감의 반영이지만, 너무 오만해져 도광양회를 일찍 접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무역전쟁으로 표출된 미국의 강력한 견제가 그 방증이다.

우리는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과 걸핏하면 대립하며 적대감을 키워 왔다. 일본은 역사적 가해자이면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뻔뻔한 나라인 탓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첫 번째 파트너고 우리 경제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협조가 필수인 나라다. 국내 정치권은 일본 역할을 객관적으로 보는 대신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왔다. 아베는 한국이 말을 안 듣자 비열하게 정치 문제에 경제를 끌어들였다. 그 결과가 한일 관계 파국 국면이다.

일본과 맞서 싸우자는 국민 분노가 거세다. 아베의 치졸한 도발 탓에 명분도 있고 국력도 커졌지만, 아직은 잠룡 수준이고 전면 대응하기엔 상황도 좋지 않다. 한국 경제는 하강 국면이다. 분단 상황인데다 내부 갈등 탓에 국가적 응집력도 떨어진다. 체급이 다른 나라와 싸울 때 누가 더 큰 피해를 볼지는 자명하다. 힘 없이 당당하기란 쉽지 않다. 국가 비상 상황임에도 ‘정부 무능이 부른 참사’라며 정략적으로 접근하거나, 파국이 부를 고통을 견딜 자신도 없으면서 강경 대응만 부르짖는 건 피해야 한다. 정부가 냉철한 현실 인식 아래 국익 관점에서 한일 관계를 풀어 가도록 조용한 응원을 보내자. 한 대 맞았다고 맞짱 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고재학 논설위원 겸 지방자치연구소장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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