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왼쪽 두번째) 대표가 15일 국회에서 일본 경제 보복 대응과 관련, 청와대 회동 수용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국회가 시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시민의 사회정치적 요구가 정치 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투입될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정상 작동할 수 있다. 신뢰의 위기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낳고 이는 개혁의 지체와 엘리트 기득 이익의 확대ᆞ강화로 나타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공고화 개념에 따라 논쟁의 소지는 있으나 수평적 정권 교체를 여러 번 경험한 한국은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 선출직 공직자의 유권자에 대한 수직적 책임성뿐만 아니라, 국가 기구 간 수평적 책임성까지 고려하면 자유선거의 존재만으로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담보하지 못하며, 최소 강령적 정의에 의한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상당 수준의 경제적 평등이 이뤄질 수 있을 때 사회적 통합과 연대가 가능해지고, 형식만이 아닌 내용에서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명제로 유명한 정치학자 헌팅턴은 개발도상국의 근대화는 정치 안정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 안정이란 정치 제도화를 의미하고, 이는 정부가 다양한 사회적 압력과 갈등을 흡수ᆞ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이미 중견 국가 위상을 가진 한국에 적용하긴 무리가 있지만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에 나름 시사하는 바가 큰 적실성 있는 논점이기도 하다.

촛불혁명에서의 ‘광장’은 정치적 위대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권 창출 이후 광장민주주의는 힘을 상실했다. 집합된 민중의 에너지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압력은 동력을 상실하고 각 이익 집단의 각종 요구가 봇물처럼 나타나는 상황에서 국가는 이에 적절하고 조직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헌팅턴이 말하는 정치적 불안정의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촛불 청구서’라고 표현하지만 한국 사회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언급이다. 지금 제기되는 비정규직과 노조, 소득 하위 직업군의 분출하는 요구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서 당연히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을 ‘신독재’로 규정하는 등 논리를 벗어난 과도한 비난이 오히려 제1 야당의 위상을 하락시키고, 한국 사회에 필요한 쟁점과 논점을 흐리고 있다. 퇴행적 ‘독재 프레임’과 철 지난 색깔론을 동원해 정쟁적 요소를 부각함으로써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적대적 공생 구도가 강화된다면, 개혁의제가 공론화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협소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는 민심과 유리되고, 국회도 소환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한국당이 보수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면 이념 공세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박근혜 석방과 반지성적 주장을 일삼은 극우 반공세력과 과감히 결별하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이는 민주당과 집권 세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일 수 있다. 한국당 지도부의 행태와 인식을 볼 때 그러한 일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이 수구 세력과의 동거에서 얻는 정치적 이익보다 중도층 이탈이 가져오는 손해가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선거는 민주당 등 진보 진영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래서 총선 후 다시 개혁 동력을 살릴 수 있다면 한국당의 수구적 태도가 사회 개혁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그러나 제1 야당이 적실성 있는 객관적 시각으로 집권 세력을 비판할 수 있을 때 여야 모두 대표성과 책임성을 확립할 수 있다. 여야의 정치적 쟁투가 헌팅턴의 정치적 불안정의 원인이 아니라 개혁을 위한 논쟁이 되기 위해 한국당은 독재 프레임과 색깔론을 일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의제 민주주의 기반이 강화되고 실질적 민주주의로 다가갈 수 있다. 건강한 제1 야당의 존재가 소중한 이유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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