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 대미외교 마치고 귀국… “직접 중재 요청은 안 했다”
美, 한일갈등에 한미일 공조 훼손 우려… 직접개입엔 선 긋기
우리 정부가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대미 외교 총력전을 벌인 이후 미국의 향후 대응을 두고 관측이 엇갈린다. 정부 인사들은 미국이 일본 조치의 문제점에 공감했다고 밝혔으나 미국이 갈등 현안에 직접 개입하는 데는 여전히 선을 긋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일 가운데 한 쪽으로 편들기 어려워 대외적으로 공개 메시지를 내지 않겠지만 추가 상황 악화를 막기 위해 물밑 조율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3박 4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13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가 만난 모든 사람은 (일본의) 일방적인 조치, 한일 간의 갈등이 우려스럽다고 다들 이해했고 공감대가 있었다"라며 “그래서 국무부 대변인이 한미일 공조를 계속 유지하고 관계를 향상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는 발표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교 당국 간 상대가 있어 모든 것을 밝힐 수는 없지만, 좀 세게 공감을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11일 방미해 백악관과 국무부 당국자 등을 면담한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도 “미국 측이 우리 문제 의식에 대해 완벽한 공감을 하고 있다”며 “한미일 간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아무한테도 도움이 안되며 상황을 관리해서 악화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은 당장 한일 간 중재 역할에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일본을 방문한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NHK 방송의 인터뷰에서 “(한일 갈등 상황을) 중재할 예정은 없다”고 말했고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도 “지금은 두 나라 관계에 개입할 때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미국으로선 갈등 현안에 직접 개입할 경우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하면서 한일 양국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차장도 “제가 미국 행정부나 미 의회에 가서 중재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제가 중재를 요청한 게 아니다. 그래서 아마 (해리스 대사가) 중재에 나설 때가 아니라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미국이 한미일 간 공조가 중요하다고 간주하고 한미일 간에 동맹 관계의 중요성을 느끼면 알아서 할 일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차장은 귀국 후 인천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미측에 직접적으로 중재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서도 “미측 인사들이 우리 입장을 충분히 공감한 만큼 필요하다면 필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공개적으로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면서도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물밑 조율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차질을 빚어 미국 기업에도 악영향을 끼치면 미국도 방관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워싱턴 외교전도 당장 미국의 조치를 끌어내기보다는 이 같은 향후 상황에 대비한 여론전에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기대와 달리 일본이 이미 예고한 대로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순을 강행하고 미국이 이를 계속 방관하면 대미 외교 실패 논란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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