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투자사의 SPC 대출 현황. 그래픽=김경진 기자

지난주 금융감독원은 국내 대형 증권사(종합금융투자사업자ㆍ이하 종투사)들의 기업대출 현황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종투사의 모험자본 공급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게 이례적인 공개의 취지였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해당 증권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금감원이 증권사별 중소기업 대출 현황만 공개했을 뿐, 어떤 증권사가 모험자본을 적극 공급하고 있는 지에는 판단을 유보했기 때문이다. 한 종투사 관계자는 “현재 당국의 중소기업 투자 분류에는 부동산 대출 등도 포함돼 있어, 중소기업 투자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모험자본 기여도를 알기 어려운데 당국이 무리한 자료로 오해만 더 키웠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위한 금융권의 모험자본 투자를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투자 현황 관리의 기본이라 할 ‘모험자본 투자’의 기준이 현실과 맞지 않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어떤 투자를 혁신기업에 대한 투자로 볼 지부터 불명확하니, 엉뚱한 곳으로 투자금이 흘러갈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7개 종투사의 기업대출 금액은 10조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중소기업에 제공된 자금은 3조934억원이었다. 겉보기엔 증권사들이 전체 기업대출 자금의 31%를 중소기업에 공급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현실과 다르다는 게 업계는 물론, 당국도 인정하는 바다. 중소기업 대출금의 68%가 특수목적회사(SPC)로 투입됐기 때문이다. SPC도 중소기업법상 중소기업 요건(자산총액 5,000억원 미만 등)에 해당하면 중소기업으로 분류된다. 페이퍼컴퍼니인 SPC는 기업의 필요에 따라 자유로이 설립되기 때문에 목적이 다양하다. 현실에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등 투자부터 기업 간 대출거래까지 폭넓게 활용되는데, 이상적으로 일컫는 혁신성장과 거리가 먼 이런 투자도 중소기업 투자로 집계되는 것이다.

실제 7개 종투사의 부동산 관련 대출금(3조7,510억원)은 전체 기업대출의 3분의 1이상을 차지했다. 업계에선 SPC를 활용한 부동산 투자가 상당액을 차지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종합금융투자사 기업대출 중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 그래픽=김경진 기자

혁신기업을 규정하는데 있어, 당국과 금융회사들의 시각 차이도 적지 않다. 최근 금감원은 ‘발행어음 사업을 하고 있는 초대형 투자은행(IB)들의 벤처ㆍ스타트업 기업 대출 실적이 전무하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초대형 IB 중 한곳인 한국투자증권은 “벤처기업 5곳에 115억원을 투자했다”고 강력 반발했다. 금감원은 해당 회사들이 벤처기업법상 벤처기업 요건 해당하지 않아 혁신기업이 아니라고 본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실제 사업이 혁신성을 띠고 있어 혁신기업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통상 전문가들이 말하는 이론적인 모험자본 투자는, 기업의 4단계(창업ㆍ성장ㆍ성숙ㆍ쇠퇴) 성장주기 가운데 창업~성장 단계에서 이뤄지는 투자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의 변동성이 심한 성숙 단계 이전까지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노리는 게 모험자본 투자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중소기업 투자’ 식으로만 현황을 관리하다 보니 어디에 투자되는지도 모른 채 당사자의 반발만 사고 있는 형국이다.

금융당국도 이를 인정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단순히 업종이나 사업기간만 갖고 혁신기업을 가리기 힘들기 때문에, 금융권과 국회 등에서 논의해 모험자본의 개념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혁신벤처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지금까지는 중소기업 중 일정 요건을 갖춘 곳이 벤처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기업 규모보다 혁신성이나 기술성 같은 기준을 통해 벤처기업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