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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파인더] WTO 제소 명분 때문에… 한일 ‘실무회의' 진실공방

입력
2019.07.14 17:30
수정
2019.07.14 23:55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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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제소 위해 협의 절차 필요… 韓 “4시간 이상 협의” 日 “설명회”

日 “韓, 수출규제 철회 요구 안 해” 韓 “유감 표명 후 원상회복 요구”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첫 실무회의에 참석했던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왼쪽)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이 13일 귀국에 앞서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 측에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등 우리 측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도쿄=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첫 실무회의에 참석했던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찬수 무역안보과장(왼쪽)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이 13일 귀국에 앞서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 측에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철회를 요구하는 등 우리 측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다고 말했다. 도쿄=연합뉴스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 시행 이후 처음으로 12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이하 경산성)의 무역관리 실무자들이 마주했다. 그러나 다음날인 13일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자회견을 열고 상대국의 주장을 반박했다. 전날 양측의 언론 발표 내용을 두고 진실 공방을 벌인 것이다. 당초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란 기대가 낮았던 만큼 이번 공방은 양국의 향후 대응을 염두에 둔 명분 확보를 위한 신경전 성격이 강하다.

쟁점은 △이번 협의의 성격 △일본 조치에 대한 철회 요청 여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여부에 대한 인식 등 크게 세 가지다.

일본 경산성은 12일 늦은 오후 브리핑에서 “협의가 아니라는 말을 짧은 시간 설명해 (한국 측의) 확인을 받은 뒤 사실관계 확인을 목적으로 한 설명을 했다”고 했다. 같은 시각 한국 산자부는 “일본 측이 회의 시작에 앞서 사실 확인을 위한 자리임을 밝혔다”고는 했다. 문제는 설명회라는 것에 대한 한국 측의 확인, 즉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다.

실무회의에 참석한 산자부 전찬수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은 13일 오전 11시 도쿄 하네다(羽田) 국제공항에서 출국 전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은 문제 해결을 위한 만남이므로 협의라고 보는 게 적당하다는 주장을 관철했다”라며 “일본 측 설명은 30분에 그쳤고 한국 측은 4시간 이상 우리 입장과 쟁점에 대해 추가 반론했다”고 했다. 이에 일본 경산성은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설명하는 자리라 규정 짓고 앞 부분 30분에 걸쳐 확인했다”고 맞섰다. 실질적 논의에 앞서 일본은 30분간 설명회라는 입장을 확인받았다는 태도인 반면, 한국은 이후 4시간 이상 우리의 입장과 반론을 제기했기 때문에 설명회가 아닌 협의라는 주장이다.

양측 주장만으로는 동의 여부를 가늠하긴 어렵다. 다만 설명회인지 협의인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는 이유는 향후 대응 과정에서 함의가 크기 때문이다. 일본이 협의라고 인정할 경우 한국 정부가 검토 중인 WTO 제소에 앞서 필요한 정부 간 협의로 주장할 수 있다. 일본은 사전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설명회라는 명분을 만들고 있다. 12일 회의장 화이트보드에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라고 프린트된 A4용지를 어설프게 붙여 놓았던 이유다.

일본 조치에 대한 철회 요구 여부에 대해서도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일본 측은 12일 “한국 측의 철회 요구는 없었다”고 밝혔다. 같은 시각 산자부는 “우리 측은 이번 조치가 전 세계 공급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고 했다. 이어 13일 기자회견에서 “일본 측 조치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고 일본 조치의 원상 회복, 즉 철회를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측은 이에 “(한국 측의) 문제 해결 요청은 있었지만 의사록에 ‘철회’라는 말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양측 주장을 종합하면 ‘철회’라는 발언이 명시적으로 오가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 다만 한국은 ‘원상 회복’이 ‘철회’ 요구라는 주장이고, 일본은 ‘철회’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만큼 “철회 요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 측은 12일 WTO 협정 위반 지적에 대해서도 “(한국 측의) WTO 위반인지에 대한 발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 측은 13일 “일본이 이번 조치에 대해 정당하고 WTO 위반이 아니며 대항 조치도 아니라고 주장했다”면서 “한국 정부는 이 세 가지에 대해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고 했다. 이에 일본 측은 “한국으로부터 반론이 없었다”는 기존 주장을 반복했다. 이 역시 이번 만남이 단순히 설명하는 자리인지 아니면 양국 주장을 개진하는 자리로 규정할지를 둘러싼 명분 싸움의 한 장면이다.

다만 한국 측의 반박으로 일본 측이 정정한 부분도 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에 따르면 12일 경산성은 “(추가 협의에 대한) 말이 없었다”고 했으나 13일 “의견 교환 과정에 발언이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 측은 13일 “24일 이전 협의를 개최하자고 수차례 제안했으나 일본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본 측은 이에 “이번 회의에서 충분히 설명했지만 추가 질문이 있다면 이메일 등을 교환하는 것을 서로 확인했다”고 했다. 양국 실무자 간 만남이 이뤄질 경우 또다시 성격 규정을 둘러싼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큰 만큼 이메일을 통한 의견 교환으로 소통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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