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여파로 표지석 건립도 불발… 한국기념관 논의도 지지부진
12일 찾아 간 중국 광저우(廣州)시 휼고원로(恤孤院路) 12호의 3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은 여느 가정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담장의 안내문은 “중국ㆍ서양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근현대 건물”이라면서 지난해 2월 광저우시 정부가 중화민국 시기에 지어진 역사적 건물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거창하게 소개했다. 하지만 현관 지붕 아래 매단 빨랫줄에는 수건과 옷가지가 걸려 있고, 현관문 바로 앞에는 빗자루, 쓰레기통, 의자, 선풍기 따위가 널브러져 있었다. 현관 앞길로는 주문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정신 없이 오갔다.
이렇게 방치된 이 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38년 7월부터 두 달 동안 임정 청사로 사용한 ‘동산백원’(東山栢園)이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재중 사학자 강정애(61)씨는 “동산백원이 임정 유적지였다는 내용이 들어간 표지석을 세우겠다고 중국이 약속했지만, 2017년 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놓고 한중 간에 갈등이 빚어지는 바람에 없던 일이 됐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가 동산백원을 찾아내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주(駐) 광저우 총영사관 행정관인 강씨에 따르면, 영사관은 2013년부터 백범일지 등 사료들을 토대로 수소문을 시작했다. 동산백원이 폭격으로 사라졌을 공산이 크다는 게 학계 중론이었지만, 2015년 9월 임정 광저우 청사의 옛 주소가 ‘휼고원로후가(恤孤院路后街) 35번지’라는 사실이 파악되면서 희망이 보였다. 1928~1929년 해당 주소에 머물렀던 중앙연구원역사언어연구소(현재 대만 소재)가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만든 DVD를 통해 1920년대 동산백원의 모습을 확인했고, 광저우시 문화국이 2016년 1월 지금 주소에 해당 건물이 존재한다고 우리 영사관에 알려줬다. 같은 해 2~9월 검증 작업을 거쳐 외교부는 2017년 3ㆍ1절을 하루 앞두고 임정 광저우 청사 소재지를 처음 알아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건물을 사들이거나 빌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씨는 “건물을 찾자마자 굉장히 흥분했고 당장이라도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중국 정부가 지정한 건축물 보호 지역이어서 매매가 불가능했다”며 “건물을 확보해 임정 전시관으로 사용하는 방법도 모색했으나, 건물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기라도 하면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중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해당 건물을 한국기념관으로 운영하는 방안 등을 놓고 관계 당국과 협의 중이지만, 어려운 일이다. 강씨는 “하다 못해 이곳이 임정 청사였다는 표지판이라도 하나 붙였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임정 광저우 청사의 현실이 다시 알려진 계기는 3ㆍ1 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외교부가 마련한 ‘한중 우호 카라반’ 행사다. 20~30대 한국 청년들이 이달 9일부터 9일간 임정 활동 근거지인 중국 충칭(重慶)과 광저우, 창사(長沙), 항저우(杭州), 상하이(上海) 등을 시간 역순으로 돌아보는 행사로, 외교부 공동취재단이 광저우에 동행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광저우=외교부 공동취재단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