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 시행 이후 양국 무역관리 담당 실무자들이 처음 만났으나 이견을 좁히기는커녕 상대국의 발표 내용을 반박하며 불신만 키우고 있다. 이처럼 양국간 인식 차이만 부각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일본 정부에선 다음달 안보우방에 대한 수출 허가절차를 우대해 주는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
13일 양국 정부는 전날 5시간 반에 걸쳐 진행된 마라톤 실무 협의와 관련, 상대국의 발표 내용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국 측 참가자인 산업통상자원부 전찬수 무역안보과장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은 이날 오전 귀국에 앞서 도쿄 하네다(羽田)국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측 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자 일본 경제산업성은 같은 날 오후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맞대응에 나섰다.
쟁점은 △이번 회의의 성격 △일본 조치에 대한 철회 요청 여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여부에 대한 인식 등 크게 3가지다.
전 과장은 회의 성격과 관련해 “한국은 문제 해결을 위한 만남이므로 협의라고 보는 게 적당하다는 주장을 관철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측 설명은 30분에 그쳤고 한국 측은 4시간 이상 우리 입장과 쟁점에 대한 추가 반론을 했다”며 “이를 어떻게 설명회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와마쓰 준(岩松潤) 경제산업성 무역관리과장은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설명하는 것이라는 규정을 모두 30분 정도에 걸쳐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12일 회의장소에 놓인 화이트보드에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라는 글자를 프린트한 A4용지를 붙여둔 바 있다. 이번 자리가 WTO 제소에 앞서 필요한 정부 간 협의가 아님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한 과장은 일본 측에 조치 철회 요구와 관련해 “우리는 일본 측 조치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고 일본 조치의 원상 회복, 즉 철회를 요구했다”고 했다. 경제산업성 측은 “한국 측의 문제 해결 요청은 있었지만 의사록에 ‘철회’라는 말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국 측의 ‘원상 회복’ 요구에 대해 ‘철회’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철회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게 일본 측 주장이다.
WTO 협정 위반에 대한 항의 여부도 논란이 됐다. 전 과장은 “일본 측이 이번 조치에 대해 정당하고 WTO 위반이 아니며 대항조치도 아니라고 했다”며 “한국 정부는 이 세 가지에 대해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고 말했다. 이에 이와마쓰 과장은 “한국으로부터 반론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일본 측의 화이트 국가 제외를 둘러싼 의견 수렴 시한인 24일 이전에 추가 협의를 요구한 것에 대해서 일본 측 말이 달라졌다. 한국 측은 “24일 이전 협의를 개최하고자 수 차례 제안했으나 일본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경제산업성은 12일엔 “(추가 협의에 대한) 말이 없었다”고 했다가 13일 “의견 교환 중에 발언이 있었다”고 정정했다. 그러나 한국 측은 사실상 일본이 추가 협의에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또 한국 측의 설명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밝혀도 좋다고 양측이 합의한 내용을 넘어선 발언이 있다”면서 이를 주일 한국대사관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해당 내용에 대해선 구체적 설명을 삼갔다. 양국 모두 이번 협의를 둘러싼 기대는 크지 않았으나 오히려 상대국에 대한 불신만 가중된 셈이다. NHK는 14일 이와 관련해 “경제산업성에서는 현재 상태가 계속되면 이르면 다음달 중순에는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우대조치 대상국(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제3국을 포함한 중재위원회 설치 시한인 18일까지 일본 측의 수용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 화이트 국가 제외 여부를 둘러싸고 양국 간 또 한번의 충돌이 예상되고 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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