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급 2.9% 오른 8590원

최임위 표결서 사용자案 최종 채택

10년 만에 최저 인상률… 공약 무산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 2020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안 투표 결과가 게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가 12일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을 올해(8,350원)보다 2.9%(240원) 오른 8,590원으로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조에 힘입어 지난 2년간 두 자릿수 인상률(2018년 16.4%, 2019년 10.9%)을 기록했던 최저임금 인상속도에 급제동을 건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적용 최저임금 인상률(2.8%)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최저임금의 가파른 상승으로 소상공인과 영세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돼 되려 고용이 얼어붙었다는 지적이 힘을 얻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무산됐다.

사용자안 15표 vs 근로자안 11표

최임위는 이날 오전 5시30분쯤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3차 전원회의에서 노동계와 경영계로부터 각각 8,880원(6.3%)과 8,590원(2.9%)의 최종 수정안을 제시 받고, 표결에 부쳐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9%(240원)오른 시급 8,590원으로 최종 의결했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79만5,310원(월 209시간 근로 기준ㆍ주휴수당 포함)으로 올해보다 5만160원 오르게 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이 오르는 근로자는 최소 137만명에서 최대 415만명으로 최임위는 추산했다. 근로자ㆍ사용자ㆍ공익위원 총 27명(각 9명) 전원이 표결해 사용자안 15표, 근로자안 11표, 기권 1표로 경영계 제안이 채택됐다.

최저임금 인상률이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결정된 것은 ‘최저임금 속도조절’에 대해 공익위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익위원 9명 중 6명이 사용자안에 손을 들어줬다. 박준식 최임위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최근 어려운 경제 여건에 대한 정직한 성찰의 결과”라며 “우리가 가야 할 경제사회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소 속도ㆍ방향조절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청와대도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하면 물가상승률에 연계한 3~4% 수준의 속도조절이 필요하다(한국일보 5월21일자 1면)’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수준이 최소화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역대 최저임금 심의 과정과 달리 공익위원안 제시 없이 노사 양측 안이 최종 표결에 부쳐지면서 인상 폭이 낮아진 면도 있다. 노사 대립을 반복하다 공익위원들이 근로자안보다 낮고, 사용자안보다 높은 중재안을 제시한 후 표결에 나선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노사 최종안으로 표결했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는 “공익위원들은 시장 상황과 국민 눈높이, 정부 입장과 정치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5%를 넘기긴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노동계도 최종안으로 6.3%를 제시한 것을 보면 심리적 마지노선은 5%였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2.9%를 제시한 경영계 전략이 주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연도별 시간급 최저임금. 김문중 기자
고용불안ㆍ경기침체 이중고… 속도 조절 현실화

속도조절론이 힘을 얻게 된 건 지난 2년 동안 최저임금을 약 29% 인상했지만, 이것이 가계소득 증가와 빈부격차 완화로 이어졌다는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동향 조사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가구(1분위) 소득은 월 125만4,700원으로 1년 전보다 2.5% 감소했다. 가구 내 취업자 수가 0.64명(지난해 1분기 0.67명)으로 줄면서 근로소득이 감소한 탓이다. 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올 1분기 5.80배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5.81배) 수준이다.

정부 예상과 달리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후 자영업자ㆍ영세 소상공인이 벼랑 끝에 내몰려 되레 고용불안이 커진 것도 원인이다. 강창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5월 “최저임금 10% 인상 가정 시 노동시장 전체의 고용규모는 0.65~0.79%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저임금이 고용 감소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업종별 타격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고용노동부의 ‘최저임금 업종별 현장 실태 파악’ 조사에서도 도소매업(17곳 조사)과 음식숙박업(24곳 조사) 대다수 사업장에서 사업주들이 최저임금 부담을 덜기 위해 고용을 줄이거나 근로시간을 단축시킨 사례가 관측됐다.

최저임금 인상에 의한 소득주도성장은 한계에 도달한 만큼 정부가 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이 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가파르게 오른 결과 정부 의도와 반대로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등 사회적 비용만 커졌다”며 “정부가 이제라도 최저임금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철저히 검토하고 기업 고용 여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정책을 손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물론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었던 만큼 정책 폐기보다 보완이 우선돼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최저임금 탓으로만 볼 수는 없다”며 “과당경쟁을 막고, 대출금리를 인하해 빚 부담을 덜어주는 게 더 효과가 높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업종별 차등화 논란은 남은 불씨

이번 결정으로 문재인 정부 3년간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9.9%로 낮아졌지만,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차등화해 최저임금 인상 폭을 추가 감속해야 한다는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상공인연합회를 중심으로 영세 자영업, 도소매업, 음식업 등의 일부 업종에는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최임위는 향후 전원회의에서 제도개선위원회가 만들어지면 해당 안건을 논의한다는 입장인데, 노동계는 직종 간 임금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장은 “현재 최저임금은 중위임금의 60% 수준에 도달해 있어 차등화 고민은 필요한 시점”이라며 “최저임금을 유연하게 지불하도록 제도화됐을 때 사용자들이 ‘최저선’보다 더 지불하겠다는 사회적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논의 진전은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임금 인상을 통해 소득 격차를 해소하겠다던 정부 구상이 장애물에 부딪힌 만큼, 저임금 근로자를 지원할 현실적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기업과 시장의 저항을 볼 때 앞으로도 대폭 인상될 가능성은 많지 않다”며 “저임금 근로자 보호를 위한 주거 지원, 복지 정책,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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