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을 받도록 해주겠다는 사기꾼의 말에 속아 자신의 체크카드를 빌려 준 행위도, 결국엔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이기 때문에 범죄로 보아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타인에게 체크카드를 빌려 준 혐의(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금융거래 접근 매체 대여 금지 위반)로 기소된 조모(24)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수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12일 밝혔다.
법원 기록 등에 따르면 조씨는 2016년 300만원을 대출해 주겠다는 금융사기단의 말에 속아 이들에게 자신의 체크카드를 빌려 준 혐의를 받는다. 이 체크카드는 사기단의 추가범죄에 악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금융거래법상 신용ㆍ체크카드나 인증서 등을 남에게 빌려주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되는 조항이 있어, 조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1심은 “체크카드 대여 행위와 대출 기회 제공 사이에 대가관계가 성립된다”며 유죄를 인정,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거짓말에 속은 것일 뿐이어서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엇갈린 1ㆍ2심 사이에서 이번에 대법원은 유죄로 본 1심의 손을 들었다. 대법원 재판부는 “대출받을 기회를 얻기로 약속하면서 체크카드를 빌려준 것은 대가를 받기로 약속하고 전자금융 접근매체를 대여한 행위”라며 “전자금융거래법은 이를 금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에 대한 충분한 심리 없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2심) 판결에는 잘못이 있다”고 결론 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