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는 예멘 주둔 자국 군대의 규모를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UAE는 2015년 3월 이래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아랍동맹의 주축으로서 예멘 전쟁에 깊이 관여해 온 나라다. ‘미들이스트 아이’ 등 중동 전문 언론들과 주요 외신들은 이날 익명을 요구한 UAE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UAE의 대(對)예멘 정책이 ‘군사 우선주의’에서 ‘평화 우선주의’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주둔 병력을 줄이더라도 UAE는 현지 무장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계속 할 것”이라면서 이런 모든 조치들이 ‘전략적 재배치’ 차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예멘의 외교가 취재원을 인용한 로이터통신의 ‘예멘 내 UAE 병력 축소’ 단독 기사를 사실로 확인시켜 준 발언인 셈이다.
미국의 이해 관계를 중심으로 중동 이슈를 분석해 온 ‘워싱턴 연구소’에 따르면, UAE는 수도 사나에서 동쪽으로 약 120㎞ 떨어진 마리브 지방에서는 전면철수를 했고, 호데이다에선 병력 80%를 감축했다. 호데이다는 인도주의적 구호물자는 물론, 예멘인들에게 필요한 생필품의 80%가 드나드는 예멘의 생명줄 같은 항구도시다. 또, 남부의 중심 도시 아덴에서도 철수가 시작됐다고 연구소는 전했다. 수도 사나가 후티 반군에 넘어간 뒤, 임시 수도 역할을 해 온 아덴은 UAE로부터 훈련과 지원을 받아 온 민병대 ‘시큐리티 벨트’와 ‘엘리트 부대’ 등이 보안을 책임지는 곳이다. 두 조직 모두 분리주의 진영인 ‘남부과도기위원회(STC)’와 연계돼 있다. 남부 하드라모트 지방 내 유전이 풍부한 샤브와주(州) 바이한 지역에는 1만명으로 추산되는 수단 출신 UAE 용병들이 예멘군 지원 세력으로 남을 전망이다.
UAE군 병력의 부분 철수 소식은 다소 갑작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국제위기그룹의 분석가 엘라지베스 디킨슨은 “UAE의 목적은 이미 지난 2년 내내 뚜렷했다”고 말한다. 그는 5일 장문의 트위터 타래(게시물 엮기)를 통해 “UAE가 반(反)후티 전선에 직접 개입하는 상황을 줄이는 대신, (UAE와) 동맹 관계에 있는 (STC 등) 현지조직들에 그 역할을 맡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점점 고조되는 이란과 미국 간의 긴장 관계가 UAE군 병력 철수를 유도한 동기까지는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요즘 들어 잇따르는 걸프 지역 내 유조선 공격 사태로 UAE가 자국 안보에 경각심을 갖고 병력을 본국으로 철수시켰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어쨌든 UAE의 병력 축소를 ‘예멘에서 발을 빼는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이는 사전에 계획된 절차였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시기가 앞당겨졌을 수는 있다.
UAE는 이미 예멘 현지의 각종 무장 단체에 대한 훈련ㆍ조종ㆍ지원을 하면서 자국의 세력 기반을 공고히 다져 왔다. 상황에 따라 ‘UAE 대리인’으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는 이들 단체는 STC 분리주의 진영에서부터 살라피스트(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자) 세력, 그리고 다국적 용병 조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예컨대 STC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UAE의 물밑 지원은 남부 독립이라는 이들의 정치적 열망이나 명분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군사적 패권 국가를 꿈꾸는 UAE의 전술적인 파트너 선택에 가깝다.
중동 지역 분석가로 활동해 온 시어도어 카라식은 미군 전문지 성조지(stars and stripes)의 지난 9일 자 팟캐스트 방송에서 UAE의 군사적 야망에 대해 잘 설명했다. 그는 “UAE는 이 지역(중동과 북아프리카) 내에서 강력한 군사대국으로 우뚝 서기를 희망해 왔다”며 “아부다비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자이드(MbZ)가 실질적 통치자로 부상한 최근 수년간 UAE의 그 꿈이 실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UAE의 꿈은 단순히 군사력 확장뿐이 아니라, 전략적인 사고의 수립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용병 전술’과 관련해서도 카라식은 “UAE가 민간군사기업(PMC) 문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표현했다. UAE가 고용한 PMC 병사들의 무리에는 서방 국가들은 물론, 수단과 남미 콜롬비아 출신 등이 두루 포함돼 있다. PMC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진 미국 기업 ‘블랙워터’의 설립자인 에릭 프린스는 2010년 MbZ에 고용된 이후, UAE의 PMC 확장 프로젝트에 적극 관여해 왔다.
UAE의 이번 조치는 예멘 전쟁의 주요 당사국인 사우디와 UAE 간의 정책적 괴리감을 드러내면서 두 나라의 경쟁 구도를 좀 더 각인시켜 주기도 했다. 사우디와 UAE는 예멘 전쟁에서 각각 공습과 지상 작전을 담당했다. 주된 역할이 달랐던 것이다. 반(反)후티 노선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요즘, 이들의 경쟁 관계는 좀 더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제임스 타운’이 지난 3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자. ‘끝이 안 보이는 예멘전쟁: 사우디-UAE 라이벌 다툼이 분쟁을 장기화하다’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예멘 분쟁의 전선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후티 대(對) 반후티 △하디 정부(사우디가 지원) 대 남부 분리주의 진영(UAE가 지원) △남부 분리주의 진영 대 살라피스트(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ㆍ이슬람주의자(알이슬라)ㆍ남부복합무장세력 △사우디 대 UAE 등으로 다양하게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네 번째 전선 ‘사우디 대 UAE’는 예멘에서 벌어지는 두 나라 간 영역 및 자원쟁탈 싸움을 뜻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사우디와 UAE는 반후티 전선에서만 동맹일 뿐이다. 보고서는 “적어도 남부에서는 후티 세력이 어느 정도 정리됐다”라며 “이제 남부는 다양한 민병대들이 영토와 자원을 두고 통제권 다툼을 벌이는 국면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부를 중심으로 펼쳐질 예멘의 불안과 혼란은 수많은 무장조직은 물론, 그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이용하려는 UAE와 사우디의 탐욕까지 복잡하게 얽혀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우려할 만한 조짐은 이미 나타났다. 예를 들어 사우디군과 UAE군이 모두 주둔 중인 동남부 알 마흐라 지방에서 사우디는 원유 수송 파이프라인과 유전 항구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사우디, 반UAE 정서가 고조되고 있는 이 지역에선 지난 6월 중순 사우디군 전면 철수를 요구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재개됐다.
이런 상황에 대한 UAE의 대응책은 좀 더 교묘해 보인다. UAE군 병력의 부분 철수 첫 보도가 나간 직후인 지난 6월 30일, 시큐리티 벨트 등 UAE 지원을 받는 민병대들은 예멘 본토에서 남쪽으로 400㎞ 떨어진 소코트라섬에 배치됐다. 인도양 북서부 아덴만 인근에 위치한 이 섬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자연유산이다. UAE는 지난 수년간 소코트라섬을 소리 없이 장악해왔다. 2017년에는 소코트라섬과 남서부 페림섬에 자국 군사기지를 건설했다고 인정했고, 같은 해 소코트라섬에서 UAE군 신병 훈련까지 실시했다. 다만 이곳에서 훈련받은 병사들 중 상당수는 ‘예멘 본토’의 최전선에 배치됐다는 게 UAE 국방부의 공식 발표였다.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급기야 본토와는 달리, 전쟁과 폭력에서 자유로웠던 ‘아라비아 반도의 보석’ 소코트라섬에마저 최근 들어 친(親)UAE 군대의 행렬과 주둔이 시작된 것이다.
수천 년간 평화롭게 살아온 섬은 지금 둘로 갈라졌다. 한편에서는 파병을 반대하는 이들의 반UAE 시위가 벌어지고, 다른 한편에선 UAE가 그동안 이 섬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구호물자를 보냈다면서 감사를 표하는 찬성파도 생겨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소코트라는 UAE를 거부한다(#Socotra_rejects_the_UAE)”라는 해시태그도 돌고 있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이렇게 적었다. “소코트라에는 후티반군이 없다. 평화로운 섬이다. 소코트라 주민들은 외부 군대를 거부한다. 그게 누구이든.”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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