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무더기 취소에 혼란 극심… 학부모들 “비싼 등록금 받을 자격 있나”
“한 학교에 일반고와 자사고를 같이 운영하는 게 가능한가요?”
중3, 고2 두 딸의 학부모인 이모(46)씨는 지난 9일 서울시교육청의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 결과를 보고 고민이 커졌다. 큰 딸에 이어 작은 딸도 내년 자사고인 세화여고에 보낼 예정인데, 자사고로 입학시키더라도 한 학기 만에 일반고로 전환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세화여고는 내년 상반기 재지정 평가가 예정돼 있는데, 같은 재단인 세화고가 이번 평가에서 자사고 지정이 취소됐다. 이씨는 “지정이 취소되면 3년 내내 일반고에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그러면서 등록금은 또 자사고 등록금을 내야한다면 부당한 처사”라고 말했다. 자사고로 입학한 학생의 경우, 학교가 중간에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자사고 등록금을 내야 한다.
올해 교육청의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에서 전국 11개 자사고가 대거 탈락함에 따라, 내년부터 1학년은 일반고, 2ㆍ3학년은 자사고를 운영하는 ‘한 지붕 두 학교’의 등장 가능성이 커졌다. 일반고로 전환된 학교에서는 학년별 등록금 차이, 학생 모집의 어려움 등 극심한 혼란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학교 현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등록금 차이로 인한 학부모들의 반발이다. 11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일반고와 자사고의 분기별 등록금(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은 최대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서울 지역의 일반고 등록금은 50만원 수준인데 반해, 자사고의 등록금은 130만~150만원 정도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장 A씨는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일반고로 전환됐는데 3배를 받을 자격이 있느냐고 나올 게 분명하다”며 “일반고로 전환된 학교들을 보면, 학부모들이 ‘이미 3년치 등록금을 다 냈다’며 내지 않고 버티거나 심지어 전학 가버리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시교육청은 한 학교 내 일반고와 자사고를 동시에 운영하는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장에선 그러나 ‘분리 운영’은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오세목 전 자사고교장연합회장(전 중동고 교장)은 “똑같은 학교에서 똑같은 선생님한테 배우는데 어떻게 수업이 다를 수가 있고, 2개 학교를 운영할 수 있겠느냐”며 “교육청 설명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A씨도 “교육청의 말은 자사고로 들어온 학생들은 계속 자사고 등록금을 내라는 의미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2021년 고교 무상교육이 전 학년으로 확대되면 등록금 격차가 더 벌어지고, 이에 대한 반발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고는 무상교육 지원 대상이지만 법령상 등록금과 법인전입금으로만 운영하도록 한 자사고는 제외된다.
이에 따라 자사고 측에선 교육부와 교육청이 일반고 전환 학교에 지원하기로 한 예산(3년간 학교당 약20억원)을 자사고로 입학한 학생들의 등록금을 지원하는데 쓰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부모들에게 등록금이라도 깎아주는 ‘당근’을 제시해야지 않겠냐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된 대성고의 이현주 학부모회장은 “자사고 재학생들의 실질적 피해를 보상할 수 있게 융통성 있는 예산 지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등록금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예산은 강사 인건비, 동아리 활동 지원비 등 교육과정 운영비로만 쓰도록 한 목적사업비”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번에 탈락한 학교 중 유일하게 도심에 위치한 중앙고는 당장 학생 모집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자사고라는 장점이 사라지면 학생들이 통학 거리가 먼 종로구까지 올 유인이 떨어진다고 봐서다. 중앙고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모교이기도 하다. 김종필 중앙고 교장은 “우리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타지 학생 지원이 줄어들 테니 가뜩이나 없는 우리 지역 학생들을 인근 학교와 나눠 받아야 한다"며 "이 때문에 주변 일반고들이 중앙고는 자사고로 남으라고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학년당 학급 수가 10학급에서 6학급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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