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린 장기미제사건인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고인이 10년 만에 구속 기소돼 법정에 섰지만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지법 형사2부(부장 정봉기)는 2009년 2월 1일 새벽 자신이 몰던 택시에 탄 보육교사 A(당시 27ㆍ여)씨를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치자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제주시 애월읍 농로 배수로에 유기한 혐의(강간 등 살인)로 구속기소 된 박모(50)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다”며 “하지만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경찰과 검찰이 재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찾아낸 증거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경찰이 유력한 증거로 제시했던 박씨의 택시에서 피해자의 옷에서 검출한 섬유 미세 증거물(실오라기)이 유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동일하다고 판단하기 어려워 해당 증거만으로 박씨가 피해자와 접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택시 이동 경로가 찍힌 폐쇄회로(CC) TV 증거와 관련해서도 영상에 녹화된 차량이 박씨가 운전한 택시와 동일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경찰이 영장 없이 박씨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해 확보한 청바지는 압수수색절차가 위법해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없고, 청바지에서 검출한 미세섬유증거와 그 분석결과도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긴급을 요하는 사정이 없었음에도 영장을 발부 받지 않은 채 거주지를 압수수색해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했다”며 “강간살인죄와 같은 중대범죄 수사를 위해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위법한 압수수색은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앞서 지난달 13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박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이번 사건은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며 장기 미제로 남아있었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A씨가 실종 당일 숨진 것으로 판단해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당시 부검의가 사체 발견 시점인 2009년 2월 8일 24시간 이내 사망했다는 소견을 제시했고 이 시간대에 박씨의 행적이 확인되면서 풀려나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러다 경찰은 2015년 일명 ‘태완이 법’ 이후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됨에 따라 2016년 2월 장기미제사건 전담수사반을 꾸려 재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와 돼지 등 동물을 이용한 실험을 실시해 A씨의 사망 추정시간을 재분석해 실종 당일인 2월 1일 오전 3시에서 4시 사이로 제시했다. 이처럼 피해자 사망 추정 시간이 달라지고, 박씨의 차량 운전석과 좌석, 트렁크 등과 옷에서 A씨가 사망 당시 착용한 옷과 유사한 섬유 미세 증거물(실오라기) 등 새로운 증거를 확보해 박씨를 지난해 5월 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증거가 박씨의 범행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어 검찰은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보강수사를 진행, A씨의 피부와 소지품에서도 박씨가 당시 착용한 것과 유사한 셔츠 실오라기를 찾아냈다. 검찰은 또 사건 발생 당시 택시 이동 경로가 찍힌 폐쇄회로(CC) TV 증거를 토대로 사건 당일 박씨가 차량에서 A씨와 신체적 접촉을 했다고 판단, 지난해 12월 박씨를 구속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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