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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日 보복 WTO 제소, 아베의 정치적 입지 약화시킬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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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日 보복 WTO 제소, 아베의 정치적 입지 약화시킬 수 있어”

입력
2019.07.11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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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ㆍ송기호 변호사(서울지방변호사회 국제위원) 

이항구(왼쪽)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과 서울지방변호사회 국제위원인 송기호(가운데) 변호사가 정영오(오른쪽) 논설위원과 함께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 방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항구(왼쪽)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과 서울지방변호사회 국제위원인 송기호(가운데) 변호사가 정영오(오른쪽) 논설위원과 함께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 방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기업에 배상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린 후 급격히 악화해 온 한국과 일본 관계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지난 4일부터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실행하면서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진두에 나서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등 모욕적 언사를 연일 쏟아내지만, 우리 측 대응은 신중함을 유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우리에게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정책 전문가인 이항구(60)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56) 변호사로부터 일본 경제 보복에 대한 대응 방안을 들어 본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가 구체적으로 밝힌 대응 방안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우대 조치를 중단하고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취급하는 쪽으로 돌아가는 것이어서 WTO 규정상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누구 주장이 맞나.

송기호 변호사(이하 송) “WTO 규정상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조치가 어떤 형식을 취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런 조치가 실질적으로 무역제한 효과가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사실상 제한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WTO에 제소하려는 근거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1조(수량제한의 일반적 철폐)에 근거하고 있다. 이 조항에는 ‘수출 허가 조치를 통해 수출을 금지 또는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의 발생 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 10년 넘게 유지한 제도를 불과 발표 4일 만에 갑자기 악화시키는 점도 수출제한 조치로 판단내릴 수 있다. 이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일본은 GATT 21조(안보상의 예외) 조항을 끌어들이려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에칭 가스가 북한 핵 개발용으로 흘러갔을 수도 있다는 등의 부정확한 정보를 무책임하게 흘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1조 역시 핵물질과 그 원료이거나 무기 탄약 같은 전쟁도구 등 일정 요건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적용받기 힘들 것이다. 일본의 이번 조치는 안보 전략물자 확산 방지를 위한 법령을 동원한 것이다. 일본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은 15개 유형의 기술, 제품 수출을 제한하는 ‘리스트 규제’를 하는 동시에, 리스트 외의 일체 품목에 대해서도 이른바 ‘캐치올 규제’라는 것을 하고 있다. 리스트에 없더라도 군사 전용 우려가 있으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제다. 지금까지 한국은 이 규제를 면제받는 27개 나라, 이른바 화이트국가에 속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우리나라를 이 국가 목록에서 삭제하겠다고 예고했다. 한국도 ‘캐치올 규제’ 대상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 수출하려는 일본 기업, 특히 한국에 원천기술 소재 등을 수출하는 중소기업들은 상당한 혼란과 처벌 위험에 노출돼 위축될 것이다. 일본 기업이 북한이나 시리아와 교역하는 수준으로 악화하지는 않겠지만, 한국으로의 기술 소재 수출이 이제는 자칫 징역 10년 이하의 처벌과 최대 3년의 영업정지에 처할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런 무리한 수단을 동원해 한국에 경제 보복을 하고 있기 때문에 WTO에 제소해 부당성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이하 이) “WTO 제소는 일본의 국가 위상에 타격을 줄 수 있겠지만, 당장 벌어지고 있는 우리 경제의 피해를 막기에는 부족한 수단이다. WTO 협정에 따르면 분쟁 해결에는 항소심까지 고려해 27개월 정도 걸린다. 게다가 현재 WTO 항소 기구는 미국이 후임 임명을 반대하면서 사실상 기능이 정지된 상태다. 게다가 아베 총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조치를 흉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1962년 제정된 이후 적용된 사례가 단 2건 밖에 없을 정도로 사실상 사문화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들고나올 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자동차 수출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려는 근거가 ‘자동차 공장은 전시에 항공기 생산으로 전환할 수 있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억지 논리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였다. 당시 피해국들 사이에서 WTO에 제소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결국 미국에 양보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한국과 일본이 오랫동안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해온 신사 협정을 회복하는 것이 일본의 경제 보복을 멈출 최선의 방법이다.”

- WTO에 제소하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실효는 없다는 것인가.

송 “길게 보아야 한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처럼 국제법상 예외 질서를 스스로 만들 정도의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 또 아베 정부가 동원하는 행정조치는 그 자체로 한계와 모순이 있다. 그 근거가 되는 일본 ‘외환 및 외국무역법’의 관련 규정은 안보를 위한 수출 규제를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WTO 제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아베의 행정조치가 안보적 위해 증거도 없이 추진되는 것으로 근거 법률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게 명확해진다면 추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WTO가 당면한 국내 피해를 막을 신속하고 즉각적인 구제 수단은 아니더라도, 일본 내에서 아베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 일본 내 보수의 주류는 ‘통상국가로서의 일본’ 즉 자유무역 원칙과 국제 규칙을 준수하고 주도하는 일본을 추구한다. 아베 총리가 한국을 겨냥한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할 만큼 합당한 안보적 근거를 찾지 못한다면 보수 주류들도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경제 보복이 시작된 이후 만난 일본인은 ‘수산물 분쟁에서 한국에 졌는데, 또다시 질 것이 뻔한 조치를 왜 강행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 관계는 단순히 국가 간 무역이 아니라, 오랜 기간 분업 체제로 긴밀히 얽혀있어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인다. 당장 일본이 핵심 부품과 소재에 대한 수출을 규제해 우리나라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를 공격하면 우리도 피해를 보지만, 반도체나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완제품을 만들거나 그런 소재를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의 피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경제 보복이 오래가기 힘들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일본의 핵심 부품ᆞ소재 수출 규제가 우리 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지부터 파악하기 힘들다. 기업의 부품 공급망은 일급 비밀이다. 그래서 정부나 연구기관이 해당 부품과 소재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 얼마나 큰 충격이 있는지 추산할 데이터도 구하기 힘들다. 일본이 수출을 규제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비책 마련도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수출 규제 발표 직후 정부에서 일본 지역과 산업 전문가를 모았는데 마땅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들은 지난 10년간 중국에 관심을 쏟으며, 일본도 미국도 유럽도 소홀히 했다. 단적으로 산업연구원만 해도 과거에는 일본연구센터가 있었는데 기능 조정으로 인해 지금 일본 담당자는 1명이다. 반면 일본은 한국 산업의 취약점을 면밀히 파악해왔다. 첨단기술 분야일수록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회사가 더 우위에 서게 된다. 일본 기업도 한국에 부품과 소재를 수출할 수 없게 된다면 단기적으로 손해를 입겠으나, 곧 중국 등에서 다른 판매처를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해당 기업은 생산이 멈출 수밖에 없다. 산업화 초기 일본의 산업 구조를 그대로 모방한 우리나라 제조업은 초기의 종속적 구조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수출 규모 같은 외형만 키워왔다. 그런 구조적 약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물론 한일 제조업 관계가 긴밀한 만큼 양국 간 무역전쟁이 벌어지면 일본의 피해도 적지 않겠지만, 우리가 훨씬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일본은 칼자루를 우리는 칼날을 쥐고 대치하는 형국이다.”

- 역대 정부는 계속해서 기술개발 투자를 강조하고 각종 혜택도 늘려왔다. 그런데 제조업의 대일 종속은 수 십년 동안 그대로 유지돼 왔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나.

이 “일본과 독일에서 첨단 부품ㆍ소재를 개발 생산하는 기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우리나라가 이런 강력한 중소기업 육성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기형적인 ‘전속 거래 구조’ 때문이다. 이 역시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지만 내용은 크게 다르다. 즉 소재나 부품에 대한 연구ㆍ개발(R&D)은 전적으로 대기업이 담당하고 협력사들은 모두 단순 납품업체에 머무는 구조가 된 것이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첨단 부품과 소재를 개발하려면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일본에서 수입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종속 위험이 크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핵심 부품ㆍ소재의 자급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야 했는데, 이를 추진하기 위해 2001년 ’부품ㆍ소재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을 제정한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담당 부처 등 정책 추진 체계가 변경되면서 추진력을 잃고 말았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대기업 주도의 기업정책이 외형적으로 성과를 거두면서, 사실상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수직 통합형 공급망이 구축돼, 중소 부품 소재 기업의 역량이 약화했다. 이명박 정부의 ‘17대 신성장동력’, 박근혜 정부의 ‘13대 미래성장동력’ 같은 산업정책은 정보기술산업과 바이오산업 등 화려한 외양을 강조했지만 그 뿌리가 되는 소재ㆍ부품의 자급체제 구축은 외면했다. 그동안 자유무역에 기반한 세계화 체제가 잘 작동해 우리 제조업의 치부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우리가 자유무역협정(FTA) 모범국이라 자부하며, 세계화의 열매를 즐기고 있을 때, 그 토대가 되는 부품 소재 산업은 정체와 퇴보를 거듭해 온 것이다. 점차 몇몇 산업을 제외한 제조업 전반의 국제경쟁력이 약화하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정부 내부에서 몇 차례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됐다.”

송 “우리나라는 국내에서 소비될 재화의 10배를 생산해 해외에 판매하는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공급망 자급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부품 소재 자립화를 위해 산업정책을 과도하게 폐쇄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안 되지만, 열려 있되 원천적이고 기본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외부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내실을 채워가는 산업정책이 돼야 한다. 통상정책도 산업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탈분업시대의 통상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인터뷰=정영오 논설위원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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