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승준씨. 한국일보 자료사진

11일 대법원이 병역기피를 이유로 17년간 입국이 금지됐던 가수 유승준(미국명 스티브 유)씨에 대한 비자발급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단한 것은, 정부의 입국 거부 조치의 절차적 측면(형식)과 처분의 적정성(실체) 양쪽에서 모두 문제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선 대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출입국 당국의 절차 미비 부분이다. 대법원은 출입국 당국이 유씨에 대해 입국금지 결정을 진작에 했음에도, 유씨에게 이 같은 결과를 제대로 통보하지 않은 것이 위법한 조치라고 보았다.

대법원이 인정한 이 사건 기초사실에 따르면 법무부는 2002년 2월 병무청장의 입국금지 요청과 출입국관리법 조항을 근거로, 유씨의 입국을 금지하는 결정을 했다. 그러나 그 정보를 내부전산망인 ‘출입국관리정보시스템’에 등록만 했을 뿐, 유씨 측에 이런 결정을 알리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이런 형식적 문제점에 대해 대법원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행정처분의 존재가 인정되려면 처분이 주체ㆍ내용ㆍ절차ㆍ형식을 모두 갖추고 외부에 표시되어야 한다”며 “그러나 이 사건에서의 입국금지 결정은 법무부 장관의 의사가 공식적 방법으로 외부에 표시되지 않고, 행정 전산망에 입력되어 관리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어 “설사 유씨가 결정에 대한 통보를 받지 않고 이를 순순히 따랐다고 해서 적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영사관의 비자 거부 처분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법무부 장관이 행정부 내에서 그런 의사 결정을 했더라도, 영사관 측이 재량권을 행사해 근거 법령에 따라 비자 발급 여부를 검토했어야 했는데, 단순히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따르기만 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근거법령상 행정청(여기서는 영사관)에 재량권이 있는 경우임에도, 행정청 스스로 재량권이 없다고 보아 처분의 공익과 상대방(유승준)의 불이익을 비교하여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입국 거부 조치의 적정성 문제도 지적됐다. 특정인에게 무기한 입국정지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도하다는 게 대법원의 결론이다. 대법원은 “출입국관리법상 외국인이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러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아 강제 퇴거되는 경우도 원칙적으로 5년간 입국금지 제한을 받을 뿐”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다른 법령과의 형평성, 재외동포법의 법 취지를 봐서도 무기한 입국 거부가 지나치다고 봤다. 대법원은 “재외동포법이 재외동포 출입국과 체류 문제에서 개방적으로 포용적 태도를 보이는 점,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 38세까지만 F-4 비자를 제한하는 점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어느 모로 봐서도 유씨에 대한 무기한 입국 거부는 과도하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유씨의 입국을 허가해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고 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지만, 형식과 실질 모두에서 정부 조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됐기 때문에,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비자발급 거부를 취소하라”는 식의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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