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대법원의 첫 배상 판결이 나온 지 8개월여 만에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소재 등의 수출 규제에 나섰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으로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스마트폰 및 TV에 사용되는 반도체 등의 제조 과정에 필요한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사진은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 샵 모습. 연합뉴스

‘가마우지 경제’라는 말은 일본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小室直樹)가 1989년 출간한 ‘한국의 붕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한 걸로 알려진다. 우리나라는 수출 완제품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부품과 소재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어서 부가가치의 상당 부분을 일본이 챙기게 되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 말이다. 가마우지라는 새의 목 아래를 끈으로 묶어 삼키지 못하게 만든 뒤, 물고기를 잡게 하여 목에 걸린 물고기를 가로채는 중국 계림 지방의 물고기잡이 방법을 비유했다.

□ 가마우지 경제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무역협회와 관세청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우리나라는 일본과의 교역에서 단 한 해도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연간 적자폭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커질수록 오히려 증가했다. 65년부터 2018년까지 누적 적자액은 6,046억달러(약 708조원)로 파악됐다. 고무로의 지적대로 소재ㆍ부품 무역적자가 지난해에도 전체 일본 무역적자 240억달러의 63%인 151억달러에 달했다.

□ 우리나라는 일본에 대해서는 소재ㆍ부품 의존국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소재ㆍ부품 강국이다. 2017년 현재 소재ㆍ부품 수출액 세계 5위다. 소재ㆍ부품 사업체 수는 2만5,869개사로 제조업에서 37.2%를 차지한다. 종업원 수는 131만6,000명으로 제조업의 44.5%, 생산액은 743조원으로 제조업의 48.9%, 부가가치는 281조원으로 제조업의 51.6%를 차지한다(팽성일 한국기계산업진흥회 정책분석센터 차장). 조립ㆍ가공 완제품 생산에 치중돼 발전해 온 국내 제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 2001년부터 특별법을 만들어 소재ㆍ부품 산업을 육성해온 결과다.

□ 문제는 첨단 제품이다.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 관련 첨단 소재나 부품 경쟁력은 아직 선진국 대비 66%에 불과한 수준이다. 세계 최초를 자랑하는 삼성전자 갤럭시 폴더블폰의 CPI필름부터 현대차 수소연료탱크에 쓰이는 탄소섬유에 이르기까지 첨단 소재ㆍ부품은 여전히 일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전체 소재ㆍ부품 일본 의존도는 2001년 28.1%에서 2018년 16.3%로 낮아졌지만, 첨단ㆍ핵심 품목 의존도는 오히려 높아지는 ‘신(新)가마우지 경제’인 셈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국내 소재ㆍ부품산업 첨단화에 전화위복으로 작용하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