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7월 로저 페더러(38ㆍ스위스ㆍ3위)와 라파엘 나달(33ㆍ스페인ㆍ2위)의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전은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명경기로 불린다. 윔블던 6연패에 도전하는 27살의 페더러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연속 세계 1위에 오른 남자프로테니스(ATP)의 황제였다. 반면 22살의 신예 나달은 2005~8년 프랑스오픈 4연패를 기록한 클레이에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하드와 잔디코트까지 영역을 넓혀가던 도전자. 두 선수의 대결에 전세계 테니스 팬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4시간 48분간의 혈투 끝 최종 승자는 나달이었다. 페더러는 세트스코어 2-3(4-6 4-6 7-6<7-5> 7-6<8-6> 7-9)로 스페인의 신예에 무릎 꿇었다. 우천으로 2번이나 경기가 지연되는 우여곡절로 실제 경기는 7시간이 넘게 걸렸다. 어둑해진 저녁 시간, 코트 위에 누워 감격에 겨워하는 나달과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 페더러의 모습이 대조를 이뤘다. 페더러는 시상식 인터뷰에서 “테니스에선 무승부는 없다. 무조건 승자와 패자가 있을 뿐”이라며 “정정당당한 경기였지만 나에겐 커리어 사상 가장 힘겨운 패배였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이후 이듬해 호주오픈 타이틀까지 나달에 뺏기며 세계랭킹 1위 자리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2008년을 기점으로 남자테니스는 페더러 천하에서 ‘빅3’의 삼국지 시대로 변모했다.
올해 윔블던 준결승은 페더러에겐 절호의 복수 기회다. 두 선수는 10일(현지시간) 열린 대회 8강에서 각각 니시코리 케이(30ㆍ일본ㆍ7위), 샘 퀘리(32ㆍ미국ㆍ65위)를 잡고 11년 만의 윔블던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페더러는 지난달 나달의 본진인 프랑스오픈 준결승에서도 0-3으로 패하며 역대 맞대결에서 15승24패로 열세다. 하지만 최근 5경기에서 4승1패로 해볼만하다는 각오다. 그는 “잔디 코트 특성에 맞게 공격적으로 나가겠다"며 "내 공격을 나달이 받아낸다면 그에게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유리해질 것"이라고 설욕 의지를 다졌다.
반대편 4강에선 노박 조코비치(32ㆍ세르비아ㆍ1위)와 로베르토 바티스타 아굿(31ㆍ스페인ㆍ22위)이 맞붙는다. 아굿은 역대 조코비치와의 상대전적에서 3승7패로 열세지만 올해 2번의 맞대결에선 모두 승리하며 조코비치 천적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랭킹 1위 조코비치라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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