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위주 교육 탓… 금융교육 무신경한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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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금융문맹 현상의 원인을 두고 제조업ㆍ수출 중심의 산업구조, 해외 선진국에 비해 미성숙한 자본시장 등이 다양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학교 교육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철저히 입시 중심으로 짜인 정규 교육과정 탓에 학생들이 윤택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실용교육이 실종된 현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찬밥 신세인 금융 

현행 교육 체계에서 그나마 금융교육을 내실 있게 받을 수 있는 시기는 초등학생 때다. 교과 외 자율활동 시간인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실과 수업 등이 적당한 시간이다. 23년째 교편을 잡고 있는 최두현 경기 양서초 교사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은행이나 신용카드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금융이 무엇인지 개념을 정확히 알진 못하더라도 성인이 됐을 때 익숙함이 크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다만 담임교사가 금융교육에 얼마나 의지를 갖고 수업을 편성하느냐에 따라 학교별, 반별로 편차가 크다.

입시 비중이 커지는 중ㆍ고등학교에서 금융은 찬밥 신세다. 본보가 주요 공통사회 교과서들을 분석한 결과 금융을 다룬 내용은 전체 분량 중 한두 쪽에 불과했다. 그마저 개념 위주로 서술돼 있어 내용도 딱딱했다. 교과과목 중 금융과 관련성이 가장 큰 사회탐구 영역의 경제 교과서에서도 금융은 가장 마지막 단원에 배치돼 있어 시험 범위에 들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덕성여대 4학년 신정아(24)씨는 “고등학교에서 이과 공부를 하고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다 보니 금융교육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며 “사회 시간에 잠깐 배운 기억이 있지만 머릿속에 남은 내용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박홍신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사무국장은 “학생, 교사, 학부모 할 것 없이 수능이 초미의 관심사라 수능 출제 범위가 아닌 이상 금융 공부의 필요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대학생이 될 때까지 통장 한번 스스로 못 만들어본 학생들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성년이 된 학생들은 금융범죄의 손쉬운 먹잇감이 된다. 지난해 금감원이 집계한 보이스피싱 범죄의 전체 피해액(4,440억원) 가운데 20%(916억원)는 20, 30대가 잃은 돈이었다. 도영석 금융감독원 금융교육국 수석은 “금융사기 사건 중엔 지극히 기본적인 지식이 없어 피해를 입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당국이 금융범죄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소비자 스스로 사리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금융사고. 그래픽=신동준 기자
 ◇”금리 공부하니 경제 뉴스 안 어려워” 

정규 교과로 인정 받지 못하다 보니 학교 금융교육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번외로 이뤄지고 있다. 금감원이나 청소년교육협의회 등 관련 기관들의 사회공헌 사업 형태로 이뤄지는 교육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금감원은 2015년부터 금융사가 인근 초ㆍ중ㆍ고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기초 금융교육을 하는 ‘1사1교’ 사업을 주재하고 있다. 지난 5월 기자가 방문한 경기 양평군 양서초에서는 신한은행 직원들이 4~6학년 학생 30여명에게 한 시간 동안 은행 통장 개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법 등을 만화 캐릭터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강의했다. 다소 어려울 수 있는 소재인 데도 학생들은 흥미를 잃지 않고 수업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6학년 장준우 군은 “신용카드를 잘못 쓰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돼 유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저작권 한국일보]금융이해력. 그래픽=신동준 기자

금감원은 전국 대학생을 상대로 4년째 실용금융 수업도 진행 중이다. 금감원 직원이 직접 강사로 나서 주요 금융상품 특성, 부채ㆍ신용 관리 방법 등 실생활 중심의 금융지식을 무료로 전수하는 사업이다. 특히 금융 관련 내용을 접할 기회가 없는 비(非)상경 계열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 금감원 설명이다.

서울 덕성여대에서 6학기째 학생 100여 명을 상대로 수업하고 있는 원대식 금감원 금융교육교수는 “생애주기에 걸친 자산관리 방법을 알고 대학을 졸업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어떤 금융상품으로 돈 관리를 하면 좋을지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 학생들도 빨리 이해한다”고 말했다. 올해 1학기에 이 수업을 수강한 4학년 송영은(23)씨는 “금리에 대해 모르고 살다가 이번 기회에 공부하니까 남의 얘기만 같던 경제뉴스에 눈길이 가는 등 변화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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