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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금융위기 일조한 ‘금융문맹’… 10년 지나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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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금융위기 일조한 ‘금융문맹’… 10년 지나도 그대로

입력
2019.07.13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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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국민 교육 강화” 불구

성인 금융이해력 OECD 평균 이하

소비주체의 소득정체로 경제 악영향

지난 5월 13일 경기 양평군 양서초등학교 학생들이 이 학교와 '1사1교'를 맺은 신한금융의 금융교육 수업을 듣고 있다.
지난 5월 13일 경기 양평군 양서초등학교 학생들이 이 학교와 '1사1교'를 맺은 신한금융의 금융교육 수업을 듣고 있다.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을 나와 굴지의 대기업에 들어간 A(30)씨는 2012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들었던 종신보험만 생각하면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가까운 친지에게 소개받은 보험설계사의 권유로 가입한 상품이었다. 매달 보험료가 월급의 3분의 1에 가까운 100만원이라 부담스러웠지만, “필요하면 나중에 연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설계사 말을 믿고 저축하는 셈 쳤다. 하지만 실제 연금으로 전환하게 되면 기존 보험을 해약한 뒤 원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해지환급금으로 연금을 받는다는 사실을 지난해 뒤늦게 알게 됐다. 놀라고 분한 마음에 보험을 해약했지만 돌려받은 돈은 그동안 부은 것보다 1,000만원 적었다.

#최근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구하던 대학생 B(21)씨는 한 건설사 구인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B씨에게 “급여 이체를 위해 통장을 한 달만 관리하겠다”며 B씨 명의의 통장, 체크카드, 비밀번호 등을 요구했다. 요구에 응하고 며칠이 지나자 B씨는 경찰서에서 “사기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으니 조사 받으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알고 보니 구인 담당자는 사기꾼이었고 B씨의 통장은 대포통장으로 사용될 뻔했다. 통장 양도는 어떤 경우에도 불법이라는 사실을 B씨는 알지 못했다.

이런 금융 관련 피해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기업 직업, 대학생 등 ‘배울 만큼 배운’ 이들까지 피해에 휘말리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에 그만큼 ‘금융문맹(金融文盲)’이 만연해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가 국가적 차원에서 금융교육의 필요성에 눈을 뜬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복잡한 금융상품 설계와 부적절한 판매 관행으로 빚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소비자 권익을 근본적으로 보호하려면 충분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9년 금융교육 컨트롤타워로서 금융교육협의회가 금융위원회에 설치되고, 협의회에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법 제정 작업이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소비자의 금융 지식 부족이 금융위기를 키웠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인식이다. 10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금융교육의 관련성을 분석하기 위해 전세계 30개국 정부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 국가의 90% 이상이 “개인의 금융문맹이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은 아니더라도, 문제를 심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진단했다.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유동성 위기, 과도한 부채 등 위기의 직접 요인을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1차적으로 금융기관 및 금융당국에 있지만, 소비자 역시 금융상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능력을 벗어난 위험(부채)을 떠안았다는 게 OECD의 결론이었다.

정부가 대국민 금융교육 강화에 착수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의 금융에 대한 무지(無知)는 얼마나 사라졌을까. 12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지난해 8~9월 전국의 성인 2,4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전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성인(만 18~79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2.2점으로, OECD 평균(64.9점)보다 낮았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지난해 국내총생산 기준)에 걸맞다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우리 사회의 낮은 금융이해도는 가계의 효율적인 자산운용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9월 퇴직연금 운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 연금 가입자 10명 중 9명은 수익률이 보다 나은 쪽으로 자산운용 방식을 변경하지 않은 채 방치하고 있었다. 소비 주체인 가계의 소득 정체는 결국 국가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뒤집어 보자면, 금융을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가계소득이 전반적으로 향상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글ㆍ사진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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