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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수석에 클로이 모레츠까지… 국산 애니 ‘레드슈즈’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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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수석에 클로이 모레츠까지… 국산 애니 ‘레드슈즈’의 도전

입력
2019.07.11 04:40
수정
2019.07.11 09:1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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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220억원에 10년간 제작… 123개국 선판매

애니메이션 영화 ‘레드슈즈’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모티브로 외모 편견을 깨부수는 진취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싸이더스 제공
애니메이션 영화 ‘레드슈즈’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모티브로 외모 편견을 깨부수는 진취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싸이더스 제공

아역 출신 할리우드 스타 클로이 모레츠와 영화 ‘헝거게임’으로 유명한 영국 배우 샘 클라플린이 목소리 연기를 했다. 스크린 속에선 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마녀의 위협에 맞서 흥미진진한 모험을 펼친다. 디즈니일까, 드림웍스일까, 그도 아니면 픽사일까. 당연히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일 거라 생각했다가 엔딩 크레디트에 수두룩한 한국 이름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25일 개봉하는 ‘레드슈즈’는 제작사 싸이더스 산하 로커스 스튜디오가 순수 국내 인력과 자본으로 만든 토종 애니메이션이다.

2003년 ‘원더풀 데이즈’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한 홍성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모아나’와 ‘라푼젤’, ‘빅히어로’ 등에 참여한 한국인 최초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출신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빚어냈다. 제작비는 220억원. 시나리오 개발 5년, 실제 제작 3년 등 완성까지 10년 걸렸다.

‘레드슈즈’는 애초부터 해외 시장을 목표로 기획됐다. 이야기는 해외 관객에게 익숙한 동화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고, 해외 배우를 캐스팅해 대사도 영어로 녹음했다. 이미 123개국에 선판매됐다. 10일 서울 강남구 제작사 사무실에서 만난 홍 감독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면서 편견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작사 로커스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홍성호(왼쪽) 감독과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출신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 싸이더스 제공
제작사 로커스 스튜디오를 이끌고 있는 홍성호(왼쪽) 감독과 디즈니 수석 애니메이터 출신 김상진 애니메이션 감독. 싸이더스 제공

설정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와 비슷하지만 이야기가 한층 기발하다. 통통한 공주 스노우(클로이 모레츠)는 마법 구두를 신으면 아름다워지고, 원래 잘생긴 왕자였지만 저주에 걸려 초록 난쟁이가 된 멀린(샘 클라플린)과 친구들은 사람 눈에 띄지 않을 때만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미녀와 야수, 추녀와 미남을 오가는 두 주인공의 변신이 웃음을 선사한다. 개성 넘치는 난쟁이들, 탐욕스러운 마녀, 신스틸러인 나무 곰돌이와 나무 토끼 등 캐릭터들의 앙상블도 동심을 자극한다.

모레츠는 시나리오를 읽고 ‘여자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이야기’라면서 흔쾌히 선택했다. 남자 주인공 캐스팅이 1년 넘게 지체되는 바람에 제작진은 클라플린이 촬영하고 있던 피지까지 장비를 싸 들고 날아가 어렵사리 목소리를 녹음해 왔다. 홍 감독은 “모레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전형적인 공주가 아니라서 좋았다”며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작화에도 많은 감흥을 줬다”고 말했다.

엔딩 크레디트를 보지 않으면 토종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눈치채기 어렵다. 싸이더스 제공
엔딩 크레디트를 보지 않으면 토종 애니메이션이라는 걸 눈치채기 어렵다. 싸이더스 제공

김 감독이 영화에 합류한 건 2016년이다. 20년간 일한 디즈니를 떠나 도전을 감행했다. 캐릭터들은 물론 작은 풀 한 포기에까지 김 감독의 손길이 닿았다. 김 감독과 애니메이터들의 목표는 1주일에 3.5초 분량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뛰어난 실력에도 대규모 프로젝트 경험은 거의 못해 본 한국 애니메이터들은 김 감독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빠르게 성장했다. 김 감독은 “처음 9개월은 1주일에 1초 분량밖에 못 만들어냈지만 나날이 숙련되는 모습이 눈에 보여 매우 뿌듯했다”고 돌아봤다.

가장 노력과 시간을 들인 장면은 스노우와 멀린의 풋풋한 로맨스다. 의외로 액션보다 감정 묘사가 훨씬 어렵다고 한다. 김 감독은 “눈빛의 미세한 떨림 같은 감정들을 관객들이 눈여겨봐 주셨으면 한다”며 “더 나아가 영어 대사의 F와 L 발음을 할 때 입모양까지 완벽하게 구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아쉬움도 있다. 일곱 난쟁이 중엔 이름이 피노, 노키, 키오인 세 쌍둥이가 있다. 캐릭터 개발 비용을 줄이기 위해 탄생한 캐릭터다. 세 쌍둥이가 모자를 쓰고 있어서 머리카락과 눈이 안 보이는 것도 제작비 절감 때문이다. 그래서 김 감독에겐 가장 마음 쓰이고 애착이 가는 캐릭터라고 한다.

홍 감독과 김 감독은 ‘레드슈즈’가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늘어나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랐다. 제작비 220억원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디즈니에선 단편 제작 비용에 불과하다. 김 감독은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자부한다”며 “이 영화 이후로도 더 다양한 한국 애니메이션이 나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홍 감독도 “현실이 열악하니 우수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더욱 빈곤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며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국에서도 픽사 같은 애니메이션 명가가 탄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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