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재계와 긴급간담회]
“한국 경제 한 단계 도약 계기로” R&D 지원ㆍ규제 완화 등 약속
“한일 대응ㆍ맞대응 악순환 삼가, 최악상황은 피해야” 인식 공유
문재인 대통령과 재계 대표들의 10일 청와대 긴급간담회는 ‘탈(脫) 일본’ 기조에 민ㆍ관이 의기투합하는 자리였다. 문 대통령과 주요 대기업 총수, 경제단체장들은 차제에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국내 제조업의 자생력을 높이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참석자들은 이번 사태를 그냥 넘겼다가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이 또 다시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상대가 한번 배신하면 영원히 협력하지 않는다는, 무관용의 ‘방아쇠 전략’을 일본의 무역 보복에 맞서 경제를 지키는 방패로 삼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과 총자산 10조원 이상 30개 기업 총수ㆍ최고경영자(CEO) 및 4개 경제단체 회장들은 이날 “위기를 기회로 삼자”면서 정부와 기업의 협력을 다짐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과 기업인들은 국내 핵심 산업과 연계된 소재ㆍ부품 공급망을 재편하는 등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논의했다. 공급 안정성 때문에 일본 중심의 공급망을 유지해 온 것이 독이 됐다는 인식을 공유한 데 따른 것이다. 고 대변인은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특히 화학 분야에선 러시아나 독일과의 협력 확대를 검토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소개했다.
이번 위기를 국내 부품ㆍ소재 산업의 자생력 제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공감대도 만들어졌다. 정부는 적절한 지원과 투자가 뒷받침 된다면 소재ㆍ부품 분야에서도 일본에서 독립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실제 일본이 사실상 독점한 분야에서 분야에서 최근 국내 기업들이 자체 기술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속속 보고되고 있다.
구광모 LG 회장은 “한국의 주력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소재ㆍ부품ㆍ장비 등 기초 산업이 탄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 회장은 “국내 소재ㆍ부품 사업의 경쟁력이 우선적으로 확보돼야 제품 수출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제품을 주문할 때 경쟁력 있는 소재ㆍ부품 채택을 요구하는 것이 세계적 기업들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 회장은 “LG는 국내 소재ㆍ부품 산업 육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베 정부가 외교적 해법을 마다하고 있어 사태 장기화가 우려되는 만큼, 기업 간 협력이 핵심 해법이라는 것에도 간담회 참석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정부는 아낌 없는 예산 지원과 규제 완화 등으로 기업에 ‘실탄’을 지원하기로 했다. 미래기술 발굴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지원, 신규 화학물질 생산과 관련한 환경 규제 완화 등에도 정부가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최대한 뒷받침을 하겠다”면서 “기업들의 공동 기술 개발과 부품기술 국산화 협력 확대 등을 통해 이번 일을 한국 경제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최태원 SK 회장은 “올해 계획한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해 국내 반도체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윤부근 삼성전자 부회장은 “R&D를 통한 신소재 개발에는 6개월 이상 소요된다”는 업계 분위기를 전하면서 관련 성과를 내기 위한 정부의 노동 정책 유연화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핵심 소재 개발에 걸림돌이 되는 화학물질관리법 등의 개정을 주문했다.
참석자들은 한일 양국이 경제적 이익을 서로 훼손하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도 공유했다. 일본을 상대로 당장의 맞대응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 정부 기조다. 황각규 롯데 부회장은 “한일 갈등이 장기화하면 국내 소비와 투자, 고용이 모두 악화할 것으로 우려되는 만큼, 정부가 풀어야 한다”고 제언했고, “”최태원 회장은 “양국 분쟁이 외교적으로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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