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 불법 적발 자료 놓고 “한국 수출관리 체계에 물음표”
日 정부 “한국 부적절 사례 있다” 해당 자료 관련해선 답변 회피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로 한일 갈등이 날로 격화하는 가운데 일본 언론이 한국의 수출관리 체제에 의구심이 가는 자료를 입수했다고 10일 보도했다. 이 자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조원진 우리공화당 의원실의 요구에 따라 제출한 것으로, 2016년부터 2019년 3월까지의 전략물자 불법 수출을 적발한 내용을 담고 있어 한국의 수출관리 체계가 미흡하다고 주장하기엔 역부족이며 억지주장을 담은 보도이다. 일본 정부는 해당 자료가 이번 규제 강화 결정에 영향을 줬는지에 대해선 답변을 피했지만, 한국의 무역관리에 부적절한 사안이 있다는 주장을 언론의 질문과 보도를 통해 우회적으로 증폭한 것으로 보인다.
후지뉴스네트워크(FNN)는 이날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전략물자가 불법적으로 수출된 사례가 지난 4년간 156건에 이른다”면서 “한국의 수출관리 체계에 물음표가 붙는 실태를 엿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김정남을 암살하는 데 사용된 VX의 제조에 사용되는 디이소프로필아민은 말레이시아 등에, 일본의 수출강화 조치에 포함된 불화수소는 아랍에미리트(UAE)로 수출된 내용이 나왔다”고 전했다. FNN은 일본 정부 조치를 가장 먼저 보도한 보수ㆍ우익성향 산케이(産經)신문의 계열사다. 후루가와 가즈히사(古川勝久)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 패널은 FNN에 “대량살상무기 관련 규제 물자에 대한 수출 규제 위반 사건이 이렇게 적발돼 있는데 한국 정부가 그동안 공개하지 않은 사실에 놀랐다”며 “이 정보를 아는 한 한국을 ‘화이트(백색) 국가’로 취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사실상 일본 정부가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부적절한 사안’의 형태를 우익 성향 방송이 대신 끄집어낸 보도이지만, 정작 사례로 나온 자료는 일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국 외교소식통은 이와 관련, “한국 정부가 문제가 있는 수출 건수를 적발해 조치했다는 것은 그만큼 무역관리를 철저히 실시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일본 정부도 전략물자 수출과 관련해 외국환 및 외국무역관리법(외환법)의 위반사례를 적발해 공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은 별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자료처럼 국회의원실의 요구로 자료를 제출하고 있으며, 이번 자료도 이미 지난 5월 한국의 한 언론사를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더욱이 해당 자료에는 일본 정부가 의심하고 있는 북한은 포함돼 있지 않아 ‘대북 제재’와 연결 짓는 것은 억지로 보인다. 적발된 품목의 행선지엔 시리아, 이란 등은 물론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도 포함돼 있다.
일본 정부는 이 자료가 한국을 겨냥한 수출 규제 조치에 영향을 주었는지 여부에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노가미 고타로(野上浩太郞) 관방부(副)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이 자료를 입수했는지, 이번 조치와 연관성이 있는지를 묻는 FNN 기자의 질문에 “한국의 수출관리에 대해선 적절한 유지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우려되는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안의 성질상 개별 사안에 답하는 것은 삼가겠다”고 답했다. 우익 언론의 적절치 못한 자료 보도 과정에 일본 관방부장관은 한국의 수출관리를 별다른 증거 없이 비난하는 기존의 두루뭉술한 답변을 더했다. 사실상 일본 정부와 언론이 억지보도를 합작한 셈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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