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 우방인 프랑스에 팔았던 재블린 미사일 한 무더기가 최근 내전이 이뤄지는 리비아의 반군 기지에서 발견되면서 유출 경로를 둘러싸고 의혹이 무성하다. 그간 동부 군벌 칼리파 하프타르 측을 지원해 온 프랑스는 미사일 전달 의혹에 대해 즉각 부인하고 나섰으나, 이 지역 내전에 이해관계가 걸린 외세가 개입하면서 군사 충돌이 격화하는 씁쓸한 현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유엔 지지를 받는 통합정부군(GNA)은 지난달 26일 하프타르 사령관이 이끄는 리비아국민군(LNA)의 가리안 기지를 급습하는 과정에서 개당 17만달러(약 2억원)에 달하는 미군의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 4개를 발견해 회수했다. 세속주의 성격의 반군인 LNA는 지난 4월 수도 트리폴리 진격을 선언했지만 3개월간 군사작전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트리폴리 인근 거점이던 가리안까지 잃게 됐다.
미 국무부는 지난 며칠간 일련번호 등을 바탕으로 추적한 결과 미사일들이 원래 프랑스에 팔렸던 것들임을 확인했다. 적외선 기술을 이용한 자체유도화기인 재블린 미사일은, 미국이 주요 우방국들에만 판매해 온 무기다. 프랑스 군 측은 반군에 미사일을 전달했다는 의혹을 즉각 부인했다.

다만 NYT는 설사 이 의혹이 사실이라도 미국과의 무기거래 협정은 물론 유엔의 금수조치 위반에 해당되기 때문에 프랑스 측은 이렇든 저렇든 시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프랑스 입장에서는 대(對)리비아 정책을 두고 핵심 동맹국인 미국과 파열음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리비아 동부에 유전을 보유한 프랑스는 하프타르 세력에 지원을 해온 반면,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유엔처럼 통합정부를 인정하면서도 석유시설 확보 등의 이해관계 탓에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프랑스 군 관계자는 NYT에 이 미사일들이 리비아 주둔 프랑스군을 보호할 목적으로 배치됐던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국은 금수조치를 위반하지 않았다며 리비아 내 ‘누군가’에게 팔리거나 이송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은 여전히 많은 의문을 남긴다고 NYT는 지적했다. 프랑스군은 전선 최전방인 트리폴리와는 거리가 한참 먼 동부 지역에 주둔해 왔기 때문이다.

NYT는 이어 “외세의 후원이 리비아 내전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오랜 우려를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2014년 내전이 재점화해 제2 도시인 동부 벵가지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도 반군 편에 선 아랍에미리트는 전투기, 드론 등을 지원했고 이집트도 공습 지원에 나섰다. 프랑스도 자국 특수부대원 3명이 숨지면서 현지에서 군사 활동을 수행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반대로 카타르와 터키 등은 정부군에 자금 및 군사 지원을 하면서 리비아 내전은 복잡한 국제전 양상으로 번져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재블린 미사일’ 사건 역시 유럽 강대국과 주변의 중동 국가들이 리비아 전쟁 결과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2011년부터 시행돼 온 유엔의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얼마나 널리 어기는지를 보여준 또 다른 사례라고 지적했다고 NYT는 전했다. 유엔의 이달 초 발표에 따르면 4월 LNA의 트리폴리 진격 선언 이후 지금까지 리비아 내전으로 인해 106명의 민간인을 포함해 1,000여명이 숨졌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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