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주여성이 이혼할 때 이혼의 ‘주된’ 책임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다는 점만 증명하면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연장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새로운 판결이 나왔다. 기존 판례는 이혼의 책임이 ‘전적으로’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판결로 이혼 후 추방 위기에 놓여 있던 상당수 결혼이주여성이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대법원은 10일 베트남 국적 여성 N(23)씨가 서울남부출입국ㆍ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체류기간 연장 불허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N씨는 임신 중인데도 시어머니의 추궁에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유산을 하는 등 결혼생활 내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N씨는 이혼 후 결혼이민 체류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배우자의 전적인 귀책 사유를 발견할 수 없다’며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로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를 견디다 못 해 이혼했다가 추방 위기에 놓인 결혼이주여성들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결혼이주여성들의 신분이 여전히 불안정해 심각한 폭력 상황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이들이 폭력 피해를 보고도 신고를 꺼리는 것은 배우자가 국적 취득에 결정적인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베트남 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이주 여성의 체류자격 연장허가 때 배우자의 신원보증을 요구한 출입국관리법 규정은 2011년에 폐지됐지만 외국인등록증 발급, 비자연장 등에서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분이 안정될 때까지는 폭력을 당해도 신고도 못 하고 견디고 있는 셈이다.
결혼이주여성 절반 가까이가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니, 이 어처구니없는 반문명적 범죄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다문화사회를 맞이할 관습과 제도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얘기인 만큼 관련 법규정 손질을 서둘러야 한다. 결혼이주여성들이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거주 자격을 얻거나 귀화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라는 UN 사회권위원회나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를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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