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남편 책임’ 정부 입장에 제동… 이주여성들 눈물 닦아줄지 주목
결혼 이주여성들은 그 동안 남편의 폭언ㆍ폭행으로 인해 이혼을 하더라도 한국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이혼의 책임이 100% 한국인 남편에게 있다는 게 입증돼야만 체류 자격을 연장해주는 정부 방침 때문이다. 10일 대법원이 이런 정책에 제동을 걸면서 배우자의 책임이 분명한데도 이혼 후 체류허가를 받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주여성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은 결혼을 위해 입국한 외국인이 체류자격을 연장하는 요건을 ‘한국인 배우자와 결혼해 국내에 체류하던 중 배우자의 사망이나 실종, 그 밖의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라고 정하고 있다. 규정에 따르면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이혼을 하게 된 이주여성들은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체류자격을 연장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남편의 폭력 등 배우자의 귀책 사유가 분명한 이주여성들에게 이 규정은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 배우자의 귀책사유를 증명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폭행을 당했을 때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창피하니까 안 나가고 가만 있다가 진단서를 못 떼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더구나 출입국 사무소가 이혼의 책임과 관련한 기준을 엄격하게 들이대면서 배우자 귀책이 분명한데도 이혼한 이주여성들의 국내 체류 연장이 불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혼이민 체류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2년간 싸운 베트남 국적 여성인 A(23)씨가 그랬다. 2015년 12월 한국인 남성 정모(40)씨와 결혼한 A씨는 유산과 고부갈등 등으로 남편과 별거한 뒤 2016년 7월 이혼소송을 내 2017년 1월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 A씨는 임신 중인데도 시어머니의 압박에 편의점에서 일하다가 유산을 하는 등 결혼생활 중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A씨는 2017년 5월 결혼이민 체류 기간 연장을 신청했지만 출입국 당국은 “배우자의 전적인 귀책 사유를 발견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그러자 A씨는 서울남부출입국ㆍ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체류 기간 연장 불허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정에서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재판에서는 ‘그 밖의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라는 시행령 규정의 해석을 놓고 △이혼 책임이 전적으로 배우자에게 있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인지 △주된 책임이 배우자에게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그러나 1ㆍ2심은 “남편 정씨에게 혼인 파탄에 관한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A씨에게도 혼인 파탄에 관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며 체류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가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냄으로써 A씨의 국내 체류 연장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재판부는 이날 “이혼한 이주여성이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부여 받기 위해서는 혼인파탄에 관해 한국인 배우자에게 전적인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일 필요가 없고, 한국인 배우자에게 주된 귀책사유가 있는 경우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의 ‘책임 없는 사유’를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인정된 경우’로 좁게 해석해서는 안되고, 상대적으로 작은 귀책사유가 있다는 점만 입증되면 체류연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특히 출입국 당국의 방침에 인도주의적 관점이 부족하다고 준엄하게 꾸짖으며 정책 변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정상적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어 이혼에 이르게 된 것이 한국인 배우자의 전적인 귀책 사유 탓인 경우에만 체류 자격을 연장해 준다면, 외국인 배우자로서는 혼인 관계를 적법하게 해소할 권리를 행사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고 한국인 배우자가 이를 악용해 외국인 배우자를 부당하게 대우할 가능성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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