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용수 공급 안돼 호숫물 끌어써
경기 포천시 영북면에 자리한 산정호수는 매년 농번기 때마다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주변 지역 농민들이 해마다 부족한 농업용수를 산정호수로부터 조달하면서 바닥만 드러냈기 때문이다. 화려한 절경과 함께 ‘국민관광지’로 각인됐지만 속살을 내비친 산정호수에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겼고 지역상권에도 부정적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산정호수의 도우미로 추진된 한국농어촌공사의 대체수원공마저 부실 시공과 함께 제구실을 못하면서 피해만 늘고 있다.
10일 한국농어촌공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한탄강에서 취수한 용수를 송수관로(2.2㎞)로 신설 양수장에 담수하는 산정호수 대체수원공 공사가 진행됐다. 매년 농번기에 용수공급으로 산정호수가 마르면서 관광지로서의 가치도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호수를 대체할 양수장 설립 사업으로, 약 107억원이 투입됐다. 당초 지난 5월말 준공, 주변 농경지에 용수를 공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 달 중순 최종 통수(관로를 통해 물을 흐르는 것) 점검에서 누수가 발견, 지금까지 이 대체수원공은 개점휴업 상태다.
농민들의 반발은 당연했다. 이길연 전국농민회경기도연맹 의장과 포천시농민회 등 5개 단체는 농어촌공사 규탄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들은 “대체수원공 부실공사로 인해 적기에 용수공급이 이뤄지지 않아 그 피해가 농가에 전가되고 있다”며 “피해보상과 함께 진상조사에 나서라”고 농어촌공사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했다. 대체수원공의 미가동 탓에 산정호수의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있지만 가뭄이 길어지면서 약 200㏊의 산정호수 주변 경작지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농민들의 판단이다.
주변 관광지도 타격이다. 산정호수 물이 농업용수로 빠져 나가면서 볼품 없는 관광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산정호수 관광지의 한 상인은 “호수 물이 말라 잡초만 무성한 모습으로 한달 째 방치되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작년에 비해 매출이 10의 1도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인근의 작은 산봉우리와 어우러져 절경이 일품인 산정호수엔 매년 150만명의 관광객이 찾을 만큼, 인기 명소로 자리 잡았다.
농어촌공사 포천·연천지사 관계자는 “아파트 10층 높이 깊이에 관로를 매설하는 난공사다 보니, 관로에서 하자가 발생했다”며 “어제까지 하루 공급용수량(1,800톤)의 30%를 공급하고 있으며, 나머지 70%는 이번 주까지 보수공사를 완료해 공급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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