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K리그 상주 경기 모두 직관한 50대 부부 “선수들 모두 아들 같아요”
“여행갈 돈, 옷 살 돈 아껴서 축구 보러 다니는 거죠. 성적이요? 지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행복합니다. 물론 이기면 더 좋죠.”
K리그 상주 상무가 가는 곳마다 늘 함께 하는 해바라기 같은 팬이 있다. 상무가 경북 상주에 자리잡은 2011년부터 9년째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상무의 전 경기를 모두 직접 관람하고 있는 최재웅(55)ㆍ박혜영(57)씨 부부다.
K리그1 20라운드 강원과 상주의 경기가 펼쳐진 9일 강원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 강원을 응원하는 2,000여명의 홈팬들을 상대로 상주 응원석의 5명도 채 되지 않는 팬들이 상주 응원에 나섰다. 비록 적은 수였지만 인기 팀 원정응원단 못지 않은 열기가 가득했다.
특히 새빨간 상주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최씨 부부는 그라운드가 떠나갈 듯 목청을 높였다. 상주에서 뛰었던 강원의 김호준(35) 골키퍼가 선방해내자 “호준아! 너 후임들이야. 살살해라”라고 고함을 지르고, 상주 이태희(27)가 상대 태클에 쓰러지자 “저거 태희 맞지? 어떡하니, 어떡해”하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대구 출신 김진혁(26)의 크게 이름을 외치기도 했다. 최씨는 “상주 선수들은 우리 아들이나 다름 없다”고 멋쩍게 웃었다.
상주는 K리그에서 소위 말하는 ‘비인기’ 구단이다. 인구가 10만명이 채 되지 않는 경북 상주를 연고로 하는 데다, 선수들이 군 복무 기간 중에 일시적으로 머무는 국군체육부대 팀이라 골수팬들이 많지 않다. 나 홀로 지키는 응원석이 외로울 만도 했지만 부부의 상주 사랑은 대단했다. 박씨는 “저희 둘만 원정 응원석에 있을 때도 많아요. 그래도 기 안 죽어요. 오히려 선수들한테 목소리가 더 잘 들릴 때도 있고요. 상대 응원단들도 이제는 저희가 응원할 수 있도록 잠시 쉬며 배려를 해주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K리그 열성팬을 자처하는 부부의 사연도 특별했다. 자신을 ‘모태’ 축구팬이라 칭하는 박씨는 1980년대 럭키 금성부터 시작해 안양 치타스의 골수팬이었다. 그러던 중 역시 축구를 좋아하던 최씨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고 1997년 남편 고향인 상주에 신혼집을 차렸다. 하지만 박씨가 응원을 하고 싶어도 상주엔 대도시처럼 프로축구 팀이 없었다. 가까운 대구나 대전으로 경기를 보러 갔지만 ‘우리 팀’이 아니라는 생각에 쉽게 정을 붙이지 못했다. 2011년 좌절했던 박씨에게 뛸 듯이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상무가 상주와 연고협약을 맺고 K리그에 참가한다는 이야기였다. 3월 인천과의 홈 개막전부터 시작된 이들의 발걸음은 벌써 9년째 이어지고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부부는 직접 승용차를 끌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제주 원정도 마다하지 않는다.
최씨 부부에겐 나름의 응원 규칙이 있다. 승패 상관없이 최선을 다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들의 이름을 더 크게 외친다. 박씨는 “무명 선수들한테 못한다고 하면 주눅들어서 더 못해요. 이제 시작하는 애들, 또 막 상주에 들어온 애들은 적응이 어렵기 마련이거든요. 또 정말 열심히 뛰는 게 눈에 보이고요”라고 강조했다.
부부에게 유독 애틋했던 선수는 현재 부산에서 뛰고 있는 이정협(28)이다. 그는 상무 시절이었던 2014년 무명 선수에 불과했다. 부부는 잠시 거쳐가는 상주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해 뛰는 이정협을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했다. 노력이 결실을 맺듯 이정협은 상주에서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돼 ‘군데렐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슈틸리케의 황태자로 활약했다.
이정협은 전역을 앞두고 상주에서의 마지막 경기 후 항상 자신을 응원해준 부부에게 자신의 사인이 담긴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선물했다. 박씨는 “정협이가 전역하고 첫 울산 원정 응원 갔을 때도 울산 유니폼에 다시 사인을 해서 주더라고요. 대표팀에 다시 발탁됐던 얼마 전에도 고맙다고 전화도 하고, 아들이나 다름 없어요”라며 미소 지었다.
자연히 상주 선수들도 매번 경기장을 찾는 최씨 부부를 부모님처럼 따른다. 선수들은 경기 때마다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2017년 7연패의 수렁에 빠져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간 끝에 잔류에 성공했을 때도 선수들이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최씨 부부였다. 지금도 많은 상주 출신 선수들이 부부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두 사람에게 왜 그토록 K리그를 좋아하는지를 물었더니 2015년 6월 K리그 챌린지 서울 이랜드전 이야기를 꺼냈다. “박항서 감독 시절이었는데 그날 따라 비가 억수로 많이 와서 전반전 끝나고 직원들이 그라운드에 고인 물을 퍼낼 정도였던 날이었어요. 근데 그날 몸을 사리지 않고 경기장을 누비던 (박)진포가 물보라를 치면서 드리블로 혼자 수비 2명을 제쳤어요. 발레복만 안 입었을 뿐이지, 저한테는 발레리나의 몸짓처럼 아름다웠어요.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그것처럼 하나, 하나 다 소중해요.”
그럼 상주와 이정협의 부산이 맞붙으면 조금은 이정협을 응원하지 않냐는 질문에 최씨는 “무조건 상주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단칼에 끊었다. ‘진짜’ 상주 팬이 확실했다.
춘천=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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