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무소속 돌풍’을 일으켰던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9일(현지시간) 오전 텍사스주 댈러스의 자택에서 숨졌다. 향년 89세.
CNN방송 등 미 언론들에 따르면 페로 가족의 대변인인 제임스 풀러는 그가 최근 5개월간 백혈병으로 투병한 끝에 이날 사망했다고 밝혔다.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꼽히는 고인은 1992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제3의 후보’로 미 대선에 출마했다. ‘보수의 텃밭’ 텍사스 출신인 그는 특히 1992년 대선 땐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 당시 대통령과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 사이에서 18.9%나 득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민주ㆍ공화당의 양당 정치에 대한 미국 유권자들의 불만과 불신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 투표 결과였으나, 보수 진영에선 페로가 공화당 지지표를 잠식하는 바람에 민주당에 정권을 빼앗기도록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시 클린턴 후보(43%)와 부시 대통령(38%)의 득표율 차이는 5%포인트에 불과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로스 페로가 약 19%의 지지율은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27%를 기록한 이후, 무소속 또는 제3의 후보로서는 최고 득표율”이라고 전했다. 1901~1909년 대통령직을 지낸 루스벨트는 1912년 ‘제3당 후보’로 다시 대권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페로는 1995년 개혁당을 창당한 뒤 이듬해 대선에 재도전했으나 득표율은 8%에 그쳤다.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고인은 1962년 1,000달러로 일렉트로닉 데이터 시스템즈(EDS)를 설립한 뒤, 대형 데이터 프로세싱 회사로 키워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향후 그는 이 회사를 제너럴모터스(GM)에 25억달러에 매각했다고 CNN은 설명했다. 1969년 베트남 전쟁 땐 미군 포로들에게 식량ㆍ의약품을 제공하려는 ‘돈키호테식 시도’를 했고, 1979년 이란 혁명 시기에는 직원 두 명을 대담하게 구조해 미국 대중의 영웅으로도 떠올랐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아들 부시’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텍사스와 미국은 강한 애국자를 잃었다. 로스 페로는 기업가 정신과 미국적 신념의 전형”이라면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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