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서툴다’ ‘무능하다’ 등으로 표현한 킴 대럭 주미 영국 대사의 외교문서가 유출되면서 끈끈하게만 보였던 미영 동맹에 균열 조짐이 일고 있다. 영국 정부는 ‘솔직한 평가가 대사의 임무’라며 대럭 대사 비호에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사 교체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그(대럭 대사)는 미국 내에서 좋은 평가나 존경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와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위대한 영국에 좋은 소식은 곧 새로운 총리를 뽑는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대럭 대사의 업무 배제를 시사하며 사실상 후임 총리에게 대사 교체를 요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나는 영국과 테리사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문제를 다뤄온 방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와 그의 대표자들이 얼마나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는가"라며 메이 총리도 싸잡아 공격했다.
실제 대럭 대사는 이미 외교업무에서 배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CNN방송은 소식통을 인용해 “대럭 대사가 월요일(8일) 저녁으로 예정됐던 트럼프 대통령,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국왕과의 만찬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워싱턴포스트(WP)에 “대럭 대사는 더 이상 미국 정부 행사에 초대받지 못할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영국 정부는 대럭 대사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문서 유출은 외교적 결례지만, 대럭 대사는 외교관으로서 맡은 바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영국 총리실 대변인은 이날 외교문서 유출이 “용납될 수 없는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대럭 대사는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 중 한 명인 제러미 헌트 외무장관 역시 “전 세계에 있는 영국 외교관들이 계속해서 솔직한 평가를 내놓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 외교관들이 내부 보고용 문서에서 주재국을 맹비난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주미 영국대사에 전적인 신뢰를 나타내면서 당장 교체 계획이 없음을 시사했다. 9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메이 총리 대변인은 이날 “총리가 대럭 대사에 대해 계속해서 전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며 “그는 총리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그의 업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영국 데일리메일은 6일 대럭 대사가 2017년부터 최근까지 영국 외무부에 보낸 비밀 외교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대럭 대사는 문서에서 "백악관은 유례없이 고장 난 상태"라며 “(트럼프 행정부가) 덜 분열되고, 덜 어설프며, 덜 서투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2016년 미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측 공모 의혹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경력이 불명예스럽게 끝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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