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9일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온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의 사망을 선고했다. 앞선 법안 보류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성난 민심을 다독이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법적 절차에 따른 정식 폐기 의사를 밝힌 게 아닌데다 그간 시위대가 요구해 온 람 장관 퇴진과 체포된 시위대 석방 등에는 단호하게 선을 긋고 나서면서 앞으로도 홍콩의 정정불안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람 장관은 이날 홍콩 정부 청사에서 주례 회의에 앞서 연 기자회견에서 “송환법은 죽었다”라면서 “정부의 법안 작업은 완전한 실패”라고 시인했다. 앞서 지난달 15일 람 장관은 홍콩 시민들의 대대적인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송환법 추진 ‘무기한 보류’ 방침을 밝히면서 “2020년 6월이 되면 현 입법회 임기가 끝나므로, 송환법도 소멸되거나 자연사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람 장관은 송환법 사망 선고 외에도 시위대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적극적 유화책을 제시했다. 람 장관은 경찰의 과잉 진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독립기구인 ‘경찰고충처리위원회’를 만들어 조사를 진행하고, 시위대·경찰·언론 등 모든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또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학생들과 ‘열린 대화’에 나서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그러나 야당과 시위대 측은 람 장관의 발언이 공식적인 ‘완전 철폐’ 선언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홍콩 야당인 공민당 소속의 앨빈 영 의원은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법안이 죽었다’는 것은 정치적일 수사일 뿐, 법적 용어가 아니다"라며 "왜 법안을 완전히 폐기한다는 말을 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지난 2014년 우산 혁명 때 리더 역할을 맡았던 학생 운동가 조슈아 웡도 공식 폐기를 재차 요구하면서, 람 장관이 “말장난으로 시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람 장관은 이날 시민들에 고개를 굽히면서도, “시위대의 모든 요구에 응할 수는 없다”면서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와 체포된 시위대를 무죄 석방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시위대는 송환법 완전 철폐 외에도 직선제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어 대규모 시위가 람 장관 뜻대로 조기에 수습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미 대규모 거리 시위는 한 달째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7일에도 10만명(주최 측 추산 23만명) 이상의 시민이 모였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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