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성장률 대폭 하향 조정… 내년 세수 줄어 ‘적자 예산’ 편성 가능성
올해 세금이 얼마나 걷힐지를 가늠하는 주요 지표인 경상성장률(물가 상승을 반영한 성장률) 전망치가 대폭 하향 조정되면서 세수 결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세수가 예상대로 걷힐 거라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반도체 경기 악화의 영향이 반영되는 하반기부터 서서히 세입 여건이 악화돼 내년부턴 세수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기재부는 지난 3일 발표한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경상(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작년 말 제시했던 종전 전망치(3.9%)보다 0.9%포인트 낮춘 것이다. 일반적인 ‘성장률’로 통용되는 실질성장률 하향 폭(0.2%포인트)보다 훨씬 크다.
이는 저(低)물가 영향이 크다. 경상성장률은 실질성장률과 물가상승률(GDP 디플레이터)을 더한 값인데, 정부는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1.2~1.3%에서 0.5~0.6%로 대폭 낮췄다. GDP 디플레이터는 소비재뿐 아니라 생산재ㆍ자본재 물가를 모두 포괄한 것으로, 이 지수가 0%대라는 것은 내수(소비+투자) 전반이 가라앉았다는 의미다.
문제는 경상성장률이 세수와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생산이 증가하고 소득과 소비가 함께 늘어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이 많이 걷히는 이치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은 “장기 흐름을 보면 국세는 경상성장률의 1.1~1.2배 수준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경상성장률 1%포인트 차이에 세수 2조~3조원이 좌우된다고 보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올해 경상성장률 하락으로 올해 세수가 2조~3조원가량 덜 걷힐 수 있는 셈이다.
정부는 경상성장률이 하락해도 올해 세수는 예상치(294조8,000억원) 수준으로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발표된 ‘7월 재정동향’에 따르면 1~5월 국세 수입은 139조5,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조2,000억원 감소했다. 올해 지방소비세율 인상(부가세의 11→15%)으로 중앙정부가 걷은 부가세 중 1조7,000억원이 지방정부로 넘어간 점을 고려하면 상반기 세수 흐름은 나쁘지 않다.
기재부 관계자는 “경상성장률 하향 조정이 세수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예상보다 세입이 크게 덜 걷힐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2013년 이후 경상성장률(3~5%)은 대기업 매출 증대, 부동산 호황 등 단기적 요인의 영향을 받아 국세수입 증가율(-0.5~11%)과 큰 괴리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하반기부터 세입 여건이 악화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기업들이 상반기 실적에 대해 납부하는 8월 법인세 중간예납(법인세 일부를 중간에 내는 제도)부터 세입 악화가 본격화할 것”이라며 “올해 반도체 경기 하락 등에 따른 영향이 세수에 차츰 반영되는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는 반도체 호황 등으로 8월 법인세 중간 예납액이 늘며 1~9월 법인세가 일찌감치 연간 목표치를 달성했지만, 올해는 반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2월 결산 코스피 상장사 573곳의 1분기(1~3월) 영업이익은 27조8,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36.8% 급감했다. 국내 최대 법인세 납부기업인 삼성전자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잠정) 또한 12조7,300억원으로 작년 상반기(30조5,100억원) 대비 58.3% 급감했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반도체 경기 악화 △저성장ㆍ저물가에 따른 소비감소 및 명목소득 증가 둔화 등의 부정적 요인이 세수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칠 걸로 보이는 탓이다. 올해는 지난해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 증가분(3월 말 납부) 등이 세수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내년부턴 이런 요인마저 사라진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우리나라는 명목소득을 기준으로 소득세 과세 구간이 설정돼 경상성장률이 오를수록 세수가 더 잘 걷히는 구조”라며 “올해 세입 목표치 달성에는 문제가 없다 해도 내년부턴 세수가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관측했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는 “(경상성장률 하락으로) 소비가 줄며 부가세도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반도체 관련 세수 감소, 각종 감세 정책 등에 따라 내년 세수는 올해 세수 수준이거나 그보다 못할 수 있다”며 “내년 예산(지출)을 상당히 확장적으로 편성하려던 기재부 입장에선 고심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내년 예산은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은) 적자예산으로 편성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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