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의 역사는 대체적으로 메소포타미아까지 3,6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물론 초기에는 주로 구슬형태로 목걸이와 같은 장신구로 활용되었죠. 제작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기였던 만큼 보석 대용품이었을 겁니다. 이후 기원 전 1세기 무렵 대롱으로 유리를 불어 병을 만드는 기법이 나오자 대중화의 기틀이 닦입니다. 마침내 4세기경 평평한 돌 위에 녹은 유리를 부어 만든 창 유리가 탄생하고, 중세에는 색유리 조각을 활용해 스테인드글라스가 유행합니다. 이후 산업혁명 과정에서 다양한 변혁이 일어나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대량의 유리를 건축과 인테리어 재료로 활용하게 되었고, 이제는 거울 같은 유리로 감싼 마천루 건물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유리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새들의 엄청난 죽음과 상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알리고자 세계적 조류보호단체인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은 2006년도부터 스프링 얼라이브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인 아이들이 자연과 새들의 보전을 이해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알리지요. 특히 올해는 ‘조류에게 안전한 유리’ 프로그램에 유럽과 중앙아시아의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였음을 발표하였습니다. 몇몇 사례를 보자면 폴란드에서는 예술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건물을 예술적으로 디자인하여 조류 충돌을 예방하기도 하고, 우즈베키스탄과 아르메니아에서는 칼새와 같은 철새가 맞닥뜨리는 유리창 충돌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운동의 대상이 다음 세대인 아이들에게 그 초점을 맞췄다는 게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https://www.naturing.net/m/2137/summary
얼마 전 전남 순천시에서는 유니버셜 디자인과 관련된 회의가 있었지요. 흔히 UD라고 하는 유니버셜 디자인은 보편적 설계라고 하며, 이용하는 사람이 성별, 나이, 장애, 언어 등으로 차별이나 제약을 받지 않도록 제품이나 시설, 서비스 등을 설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디자인도 결국 인간만을 위한 설계이며, 다른 생명과의 공존에 대한 고려가 무척 아쉽습니다.
조금만 더 넓게 생각한다면 불편이 아닌 목숨이 달린 생명들에게 배려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그 어디에도 유리나 투명판은 도사리고 있습니다. 유리를 만들어낸 우리조차도 잠시 방심하면 유리문에 충돌합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도로와 철도 옆에도, 하늘을 찌를 듯 솟아난 거대한 빌딩숲에도, 숲 언저리에 들어선 주택단지에도, 한껏 멋을 부린 카페의 유리에도, 게으르게 승객을 기다리는 시골 버스정류장 유리에도 죽음의 냄새는 묻어있습니다. 이 무의미한 죽음을 지워내기 위해서는 정말 많고 다양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4&v=CLrGomdDnGM
법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육이 필요합니다. 각자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와 다양한 매체가 동원되어야 합니다. 건축가나 설계자는 조류 친화적 설계를 해야 하고, 산업계에서는 충돌을 방지하는 유리를 개발해야 합니다. 일반인들은 삶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피해사례를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연환경과의 공생과 균형을 위한 생태 윤리적 고민이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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