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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부엌이 죽었다고?

입력
2019.07.1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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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반찬이 아니어도 따뜻한 밥에 김만 싸먹어도 훌륭한 집밥이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거창한 반찬이 아니어도 따뜻한 밥에 김만 싸먹어도 훌륭한 집밥이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내 휴대폰에 생활에 요긴한 앱은 웬만큼 다 깔려 있다. 그런데 국민 앱의 경지에 올랐다는 ‘○○의 민족’이니 ‘○기요’는 없다. 꼭 집밥을 고집한다기보다는 배달 요리는 왠지 남의 것 같아서다. 휴일에는 늦잠을 자고 일어나는 아들과 집밥이냐 배달이냐를 놓고 가끔 다투는 일도 생긴다. 그럴 때 내 지청구는 뻔하다. “장가가 봐라. 엄마가 해 주는 집밥이 그리울 거다.”

얼마 전 글로벌 금융 기업 UBS가 냈다는 보고서 기사를 읽었다. 보고서 제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Is the kitchen dead?(부엌은 죽었는가?)’ 그 제목에 홀려서 원문을 찾아 읽었다. 전 세계적으로 음식 배달 산업이 엄청난 속도로 커져가고 있다는 시장 분석 리포트였다. 그래, 난 역시 아재이고 꼰대였다.

그래도 좋다. 오늘 나는 집밥을 생각한다. 집~밥, 두 음절을 입 밖에 내본다. 입술이 살포시 부딪히고 목젖이 열린다. 누가 이런 다정한 질감과 다스한 온도의 단어를 지어냈을까. 다정은 진정 병(病)인가. 작가 김훈은 어느 책 추천사에서 모국어 ‘ㅂ’은 마음의 깊은 곳에서 슬픔을 흔들어 깨운다고 했다. 그건 ‘밥’과 ‘아버지’의 ‘ㅂ’이라고 했다. 나는 ‘집’도 추가하고 싶다. 집밥에는 그 비읍이 세 개나 들어 있다. 기실 집과 밥은 한 몸이다. 집이 밥이요, 밥이 집이다.

우리는 집밥을 노래한다. 오죽했으면 ‘가정식 백반’이라는, 그 이름도 희한한 정체불명의 메뉴가 인기를 끌까. 방송의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는 ‘집밥’이란 단어가 들어가야 시청률이 높아진다. 아무리 수다스런 대세 연예인들도 시골 노모의 집밥 앞에는 얌전한 제비 새끼가 돼 입을 벌린다. “그래 역시 집밥이여~.”

그런데 어느 날 집밥의 전도사께서 홀연히 등장하셨다. 그가 TV의 요리 프로그램을 평정하면서부터 집밥의 개념이 조금 바뀌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집에서 쉽고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레시피, 반찬은 없어도 그만인 한 가지 중심의 식사, 하지만 보통 사람의 평범한 입맛에 잘 맞는 음식, 그게 집밥이 됐다. 집밥은 “그냥 집에서 먹는 밥”이지,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 집밥의 혁명이었다. 백 선생은 ‘탈(脫) 엄마’의 식탁에 큰 공을 세웠다. 이 세상의 엄마들에게서 집밥이라는 노동의 짐을 덜어줬다.

하지만 우리네 ‘마음 사전’에 등재된 집밥은 그게 아니다. 집밥의 핵심은 집이라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다. 그 밥을 짓는 존재, 그리고 그 밥상머리를 둘러싼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유대감이 집밥이란 발음에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의 준비와 정성과 헌신과 희생과 손맛이라는 속성이 있어야만 집밥인 것이다. 누군가에게 평생 업이 돼 버린 보살핌의 지난한 노동에서 나온 게 집밥이지, 집에서 뚝딱 해치우는 한 번의 끼니가 집밥이 아닌 것이다. 영혼의 허기까지 책임져야 집밥인 것이다.

엄마들은 그걸 본능적으로 안다. 어쩌랴. 힘이 남아 있는 한 노량진 쪽방 문 앞에, 출가한 자식의 냉장고에 여전히 김치와 밑반찬을 퍼나르시는 걸. 눈물을 씻고 일어나 새벽밥을 짓던 엄마의 내공이 어디 가랴. 늘 한두 걸음 늦게 먹던 엄마, 생선 대가리가 최고로 맛있다던 엄마는 영정으로 돌아와서야 비로소 온전한 상을 받는다.

앞의 보고서에서 부엌은 집밥(home cooking)의 은유다. 부엌에는 엄마의 그림자가 있다. 엄마가 있는 한 부엌은 죽은 게 아니다. 엄마가 있는 한 우리는 평생 배가 고프다. 음식 배달은 음식 산업이 아니다. 수송 산업일 뿐이다. 배달 앱이 아무리 똑똑해져도, 로봇이나 드론이나 자율주행 차량이 스타 셰프의 요리를 배달해 줘도 우리는 이 대사가 사무치게 그리울 게다. “엄마 밥 주세요.” “오, 그래 내 새끼, 배가 고팠구나.”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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