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크로네시아 태평양 섬나라 키리바시 공화국이 뉴스 등에 언급되는 건 거의 예외 없이 둘 중 하나 때문이다. 기후 변화로 인해 영토가 잠겨 가는 묵시록적 재난의 현장으로, 아니면 “때묻지 않은”이나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지구의 마지막 파라다이스로. 어떤 경우든 다른 하나가 장신구처럼 언급되는 것도 거의 어김이 없다.
여행지로서 키리바시는 그리 녹록한 곳은 아니다. 한국에서 가려면 하와이나 호주를 경유해 수도 사우스타라와(South Tarawa)나 크리스마스 섬에 닿을 수 있다. 경유지 체류 시간까지 감안해 시간을 알뜰히 붙여도 편도 이틀이 걸린다. 키리바시처럼 자연이 가장 값진 관광지의 시간은 한없이 더디게 흐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키리바시는 자가용 비행기쯤은 가진 이들 아니면 한없이 느긋한 은퇴자들의 여행지이지, 주말 붙여 열흘도 벅찬 평범한 직장인이 엄두내긴 힘든 곳이다.
하지만 물리의 시간은 일정하게 흐른다. 기후 과학자들에 따르면 키리바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유엔과 세계은행 환경 보고서는 지금 추세라면 2100년이면 키리바시와 투발루 등 태평양 여러 산호초 섬나라가 사라지리라 판단한다. 그 추세는 이미 현실화해, 2015년 키리바시 섬 주민 75명이 부풀어오른 바다에 집과 땅을 잃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2003~2016년 키리바시 대통령을 지낸 환경운동가 아노테 통(Anote Tong)과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매튜 리츠(Matthieu Rytz)의 2018년 다큐 ‘아노테의 방주(Anote’s Ark)’는 키리바시의 그 절박한 위기를 2015년의 기후 난민인 80년생 티메리(Tiemeri)와 그의 6남매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작품이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파국적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해 화석연료 사용 금지 등 인류가 유효하게 개입해 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0년 남짓밖에 없다고 선언했다. 다큐멘터리의 두 제작자는 “키리바시의 경우는 이미 늦었다. 국제사회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제 태평양 섬나라 주민들이 존엄을 잃지 않고 다른 나라에 정착해 살 수 있도록 길을 열고 자리를 마련해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7월 12일은 키리바시가 197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국가기념일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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