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파인더] 
 4대 다자 수출통제체제 규정 따라 반입ㆍ유출 회원국과 투명한 공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오사카 상점가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서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일본이 무역 보복의 구실로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을 뜬금없이 들고 나왔다. 전략 물자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북한에 흘러 들어가도록 한국이 방조했기 때문에 수출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지만, 우리 정부는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에칭가스를 비롯한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 부품 수출 규제는 정치 보복’이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을 물타기 하려는 것이 일본의 속내라고 정부는 보고 있다. 올해 초 초계기 갈등 이후 일본은 우리 정부의 대북 제재 위반 의혹을 반복적으로 제기해 왔다.

일본은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에칭가스의 대북 유출을 한국이 막지 못했으므로 일본으로선 수출 규제를 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에칭가스는 반도체 회로 제작에 필요한 핵심 소재로, 일본의 3대 수출 규제 품목에 포함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5일 방송 인터뷰에서 의혹을 처음 공론화했다. 그는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으므로 (안보) 조치를 취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아베 총리도 7일 “(한국이) 정직하게 수출 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나타내 주지 않으면 우리는 (반도체 소재 물질 등을) 내보낼 수 없다”고 논란에 불을 지폈다.

우리 정부는 황당무계하다는 반응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8일 “우리는 핵물질ㆍ재래식무기ㆍ생화학무기ㆍ미사일 등 전략물자 유통을 통제ㆍ감시하는 4대 다자 수출통제체제 참가국으로서 의무 사항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며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협조 하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4대 다자 수출통제체제 규정에 따라 전략물자의 반입과 유출을 다른 회원국들과 투명하게 공유하고 있는 만큼, 일본 주장대로 에칭가스를 몰래 혹은 실수로 북한에 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통일부 당국자도 “사실무근의 주장이라 부처 차원에서 별도 대응할 계획도 현재로선 없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에 전시된 반도체웨이퍼.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 핵심소재에 쓰이는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뉴스1

정부 절차 상 전략물자의 대북 유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략물자 분야의 한 정부 관계자는 “관세청, 산업부 등 수출입 통제 당국의 수입 허가 과정에서 물품 반출 대상 등을 전부 파악하고 서약까지 받는다”며 “일본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외교 소식통은 “타당한 의혹이라면 4대 다자 수출 통제체제에 함께 참여하는 회원국이자 우방국으로서 우리 정부에 협의를 구하고 사실 관계 밝히는 게 먼저일 텐데,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며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방증이 아닐까 의심된다”고 말했다. 초계기 갈등 당시에도 일본 정부는 증거는 내놓지 않은 채 정치권의 입을 통해 미확인 의혹을 제기해 논란을 키웠었다.

아베 정권은 21일 참의원 선거 전까지는 태도를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무역 보복과 무책임한 의혹 제기로 양국 간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은 사실 관계가 정확하지도 않은 전략물자의 대북 유출 주장을 보복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일본은 갈등을 악화하는 행동을 자제하고, 동시에 우리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 진전을 위해 조속한 한일 정부 간 협상 재개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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