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17년 만에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펴내

따듯함과 신중함을 조합해 작가로 빚어낸다면, 그건 아마도 김애란이 되지 않을까. 대체 어떤 시간과 경험이 모여 지금의 김애란이 되었을까. 어떤 것들을 보고 듣고 자라, 어떤 이들과 교유한 끝에,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김애란에 다다랐을까. 그 전후가 궁금한 독자라면 그의 데뷔 17년만의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과 마주하면 된다. 소설가이자 학생이었던, 딸이자 아내인, 시민이자 인간으로서의 김애란이 한 권에 오롯이 담겼다.
2003년 등단한 후 2017년 낸 소설집 ‘바깥은 여름’까지 김애란은 꾸준하고 굳건한 인기를 누려왔다. 한결같이 그의 이야기를 지지하는 독자들을 떠올리면 17년만의 첫 산문집은 조금은 늦다 싶다. 정작 본인은 “산문은 왠지 인생 경험과 공부가 필요한 장르 같은데, 내가 갖고 있는 삶의 이력이나 이야깃거리가 그다지 풍부하지 못한 것 같았다”고 말한다. 5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책은 1부 ‘나를 부른 이름’, 2부 ‘너와 부른 이름들’, 3부 ‘우릴 부른 이름들’ 세 부분으로 나뉜다. 1부가 김애란이라는 개인의 성장서사라면, 2부는 동료 문인과 주변인물 등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썼고, 3부는 책과 여행, 사회적 사건에 대한 단상이 담겼다. 나->너->우리로 자연스레 확장되는 서사다. “사회도 사람도 타고나는 것보단 경험을 통해 변하잖아요. 거기에 여러 시간에 걸쳐 쓴 글을 묶으려다 보니 틀이 필요하겠다 싶었고, 나, 너, 우리의 순서로 구성되면 어떨까 싶어 (출판사) 편집부에 먼저 제안 드렸어요.”
책의 첫 모습이라 할 수 있는 1부의 여는 글은 2017년 한국일보 연재 ‘나를 키운 8할은’ 코너에 실린 기고([나를 키운 8할은] 김애란 "내 유년의 정서를 만든 맛나당")다. 20년 넘게 맛나당이라는 손칼국숫집을 운영한 어머니를 보고 자라, 그의 ‘규칙적인 도마질 소리를 들으며 밀가루를 먹으며 열 아홉이 된’ 작가 이야기다.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한 시간도 유년기에 부모님 아래서 보낸 시간만큼이나 되어서, 이제는 가족에게 받은 영향의 자장을 벗어난 시기가 됐죠. 그래도 어릴 때 형성된 ‘구매가 불가능한 정서’, 즉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기본 환경은 부모님이 깔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뒤에 조금씩 업데이트 되는 거죠.”

그의 첫 장편인 ‘두근두근 내 인생’은 조로증에 걸린 아이와 어린 나이에 졸지에 부모가 된 부부가 등장한다. 스물 세 살의 나이에 등단하고 2년 뒤 최연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가 된 그는 소감에서 “최연소라는 수사에 부담”을 느끼고 “생명이 긴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너무 일러’ ‘일찍 나이든’ 그가 떠올린 궁여지책은 ‘농담’이었다. “데뷔 초기에는 제가 작가라는 사실이 되게 어색했어요. 어릴 때 생각한 작가의 모습은 나이와 경험, 지혜가 훨씬 많은 사람의 이미지였는데 제가 작가가 되어버려서 어떡하지, 싶은 심정이었거든요. 어색한 나머지 차라리 까불어야겠다 싶었다고 할까요.”
이번 산문집에는 ‘찧고 까부는’ 특유의 농담이 곳곳에서 빛난다. 그는 책에서 “내 소설에 명랑한 세계가 가능했다면, 내가 특별히 건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찧고 까불며 놀 수 있는 마당을 선배들이 다져줬기 때문”이라고 공을 돌렸다. 김연수, 윤성희, 편혜영 등 그가 믿고 의지하는 동료 작가들에게 보내는 ‘헌사’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글은 기본적으로 혼자 쓰는 일이잖아요. 한국처럼 변화 속도가 빠른 데서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작가들이 저마다의 해석으로 써나가고 있다는 점에 마음으로 기대고, 용기도 얻어요.”
책의 표지에는 김 작가가 직접 제안한 터키 사진작가의 창문 사진이 얹혔다. “창문도 책도 열면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사각 틀이잖아요. 편하게 환기시키고 싶을 때, 바람도 맞고 풍경을 보고 싶을 때 이 책을 여셨으면 해요. 그 풍경 안에 제 근경도 원경도 모두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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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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