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에 맞서 유배됐다 화려하게 부활
‘조국-윤석열’ 카드에 檢 조직 장악 우려
정치적 외풍 막고, 수사중립성 지켜낼까
검찰 개혁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집념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박근혜 정부 파탄의 공범 격인 검찰에 대한 단죄를 바라는 민심의 이행이라고만 보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의 경험과 그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의의 죽음이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참여정부의 검찰 대응 기조는 자유방임주의에 가까웠다. 권력이 족쇄를 풀어주면 검찰 스스로 제자리를 찾을 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사와의 대화’에서 보듯 나타난 결과는 자기 혁신이 아닌 검찰권의 무한 증식이었다. 그러곤 뒤에서는 “검찰을 틀어쥘 역량도 의지도 없는 정권”이라며 조롱하는 것을 보며 검찰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가슴에 깊게 새긴 듯하다.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검찰 개혁 방향은 두 갈래다. 하나는 검찰의 권한 축소를 위해 제도적으로 힘을 빼놓는 방법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이 대표적이다. 이는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 보장에 부합하는 것이어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다른 갈래는 검찰 요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배치하는 것이다. 검찰 개혁과 적폐 청산의 지속적 수행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게 그 명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대통령의 인사권 극대화를 통한 ‘자기 사람 심기’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요체로 하는 검찰 개혁과 모순되는 것 아닌가. 원칙을 흐트리고 코드를 우선하는 거듭된 파격 인사는 검사들에게 “정권에 줄 잘 서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더 불편한 건 현 정부의 검찰 인사가 문 대통령이 그토록 싫어하는 이명박 정권이 썼던 수법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직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기용은 이 전 대통령이 정권 위기 탈출을 목적으로 시행한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한 파렴치한 인사였다. 또 다른 카드로 서울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에 직행시킨 것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8년 전의 ‘권재진-한상대’ 체제가 이제 ‘조국-윤석열’ 조합으로 재탄생을 앞두고 있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얼마나 험한 비난을 쏟아냈는지 언급할 필요도 없이 “검찰을 정권에 예속시키려는 의도”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뿐이 아니다. 차기 민정수석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거론되는 사람은 하나같이 노무현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검사들이다.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유력한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은 문 대통령과의 인연은 물론 윤 검찰총장 후보자와 각별하고, 조 수석과도 학생 시절부터 친분이 두텁다고 한다. 차기 민정수석이 기정사실로 굳어진 신현수 전 국정원 기조실장 역시 문 대통령과 청와대 근무 연이 있다. 문 대통령을 정점으로 법무ㆍ검찰 핵심 인사들이 거미줄처럼 친분과 인연으로 맺어진 모습은 우려를 자아낸다.
현 상황에서 가장 어깨가 무거워야 할 사람은 윤석열 후보자다. 그는 뼛속부터 검사로 알려져 있다. “검찰을 사랑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검사 윤석열’의 상징어처럼 돼 있다. 사실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는 그에게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있다. 제도적 개혁을 바라는 여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권의 논의는 검찰이 거스를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정작 그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치적 외풍 배제와 수사의 중립성 의지다. 조만간 문재인 정부가 후반기에 접어들면 측근과 권력형 비리 의혹이 불거질 개연성이 있다. 중간평가 성격인 총선도 다가온다. 검찰이 정치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 윤석열의 본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자신의 닮은꼴인 한상대 총장은 좋은 반면교사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과 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서 정권 수호의 첨병 노릇을 하다 검사들의 ‘항명 파동’으로 불명예 퇴진했다.
윤 후보자는 8일 인사청문회에서 “외부 압력으로부터 검사들의 버팀목이 되는 게 검찰총장의 존재 이유”라고 했다. 박근혜 정권의 외압에 맞서 좌천을 거듭하다 부활한 윤석열은 이제야말로 진짜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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