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에 이은 후속 조치로 한국산 농산물에 대한 수입 규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농가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농산물 규제가 현실화하면 대(對) 일본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파프리카, 토마토 농가들이 특히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8일 외신에 따르면 마이니치 신문은 “아베 내각이 한일 갈등 악화 상황의 장기화를 피할 수 없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고 지난 6일 보도했다. 이어 ‘다음 조치도 당연히 있다’는 외무성 간부의 말을 전하며 한국산 농산물에 대한 수입 규제 등이 추가적인 보복조치로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농산물 규제가 추가 보복카드로 거론되는 것은 일본이 한국의 최대 농식품 수출시장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대일 농식품 수출액(13억2,000만달러)은 우리나라 전체 농식품 수출(69억3,000만달러)의 19.1%로 가장 많았다. 중국(16.0%) 미국(11.6%)보다 높다.
특히 지난해 파프리카 수출(9,230만달러)의 99%는 일본으로 향했다. 토마토와 김치의 대일 수출 비중도 각각 77%, 57%로 높은 편이다. 국내 농식품의 일본 시장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그만큼 수입 규제에 따른 ‘파괴력’도 클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업계에선 일본이 당장 전면 수입제한보다는, 검역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가령 농산물 수입 물량의 일부를 무작위로 선별ㆍ조사하는 지금의 ‘샘플링’ 방식 검역이 전수 검사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명동주 한국파프리카생산자조회 회장(영농조합법인 아트팜 대표)은 “전수검사로 바뀌면 검역이 길어지고, 그 과정에서 품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농가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파프리카 농장 대표는 “국내 파프리카 생산량의 50~60%는 수출, 40~50%가 내수인데 일본 수출이 막혀 내수 물량이 늘어나면 당장 파프리카 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 익산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정병두 로즈밸리 대표는 “2년 전부터 기술력 향상과 기상 호조로 토마토가 과잉 생산되고 있는데 일본 수출까지 막히면 가격 폭락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파프리카ㆍ토마토 등 대일 주력 수출품은 모두 검역 문제로 중국 수출이 어려워 단기간 내 수입선 대체도 불가능하다. 김치업계 관계자는 “일본에 김치를 수출하는 대다수가 중소기업이라 보복조치가 장기화하면 타격이 클 것”이라고 귀띔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일본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특이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필요한 경우에 신속한 대응조치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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