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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명 희생된 시카고 폭염 ‘사회적 부검’ 교수의 조언은

입력
2019.07.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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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이넨버그 미 뉴욕대 교수 “폭염 피해 막기 위해선 사회 기반 시설과 소통이 중요”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사회학 교수는 1995년 7월 시카고를 강타한 폭염을 자연 재해가 아닌 사회적 재난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글항아리 제공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사회학 교수는 1995년 7월 시카고를 강타한 폭염을 자연 재해가 아닌 사회적 재난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글항아리 제공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였어요.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큰 기상 재난이었지만, 언론과 정부에겐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교수에게 1995년 시카고 폭염은 기상 재난 그 이상이었다. 그는 폭염에 따른 인명 피해를 고립된 사회, 이웃 간 단절, 지나친 공권력 신뢰, 시민을 그저 소비자로만 대하는 정부의 태도 등 여러 문제가 복합돼 나타난 결과로 분석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담은 책이 ‘폭염사회’다. 2002년 출간된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건 지난해 여름, 폭염이 절정에 이를 무렵이었다.

기상학이 아닌 사회학 전공인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시카고 폭염을 연구 주제로 잡은 이유는 단지 시카고가 그의 고향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폭염사회’ 출간을 준비하면서 유년 시절 추억이 가득한 고향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다”고 그는 밝혔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지난 1일 한국일보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폭염사회’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여름. 시카고=한국일보 폭염 기획 특별취재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여름. 시카고=한국일보 폭염 기획 특별취재팀

95년 7월 14일부터 20일까지 시카고에선 폭염으로 최소 739명이 목숨을 잃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숫자로만 이 참사를 설명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16개월간 폭염 참사가 극심했던 지역을 직접 탐사했다. 그는 “인종 요인은 비슷해도 폭염 피해 규모가 매우 달랐던 이웃 도시가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현장 취재를 통해 사회 기반 시설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다. 먼저 폭염 당시 시카고시장의 행정적 실책을 정확히 증언해줄 내부 고발자를 찾아야 했다. 대부분은 폭염 당시 벌어진 일을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시카고시가 폭염에 관해 발간한 자료는 오류가 많았고, 폭염이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세뇌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비판했다.

1995년 7월 14일부터 시카고 폭염으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가 점점 늘어난 것을 당시 신문 헤드라인을 통해 알 수 있다. 글항아리 제공
1995년 7월 14일부터 시카고 폭염으로 인해 발생한 사망자 수가 점점 늘어난 것을 당시 신문 헤드라인을 통해 알 수 있다. 글항아리 제공

“진실을 말할 사람들이 나타난 건 행운”이었다. 시카고시 역학조사관 스티븐 휘트먼과 쿡카운티 시체안치소 수석 검시관 에드먼드 도너휴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시정부가 숨기려고 했던 진실에 대해 입을 열었다. 특히 도너휴는 시가 축소 발표한 폭염 피해 사망자의 수를 정면 반박해 시장을 곤란하게 했다. 당시 시카고시의 한 고위 관료는 “시장은 도너휴 얘기만 나오면 미치기 직전이었다. 그는 도너휴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어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클라이넨버그 교수 역시 도너휴에 대해 “그는 자신이 내린 평가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정치적 편의를 위해 과학적 원칙을 포기하라는 시장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극복하기 어려운 지점도 있었다. 타고 나길 백인 남성인 그가 유색 인종 사회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하지만 친밀감을 느낄 정도로 ‘적정선’을 지키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는 것뿐이었다. 무려 1년 2개월이 걸렸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대부분은 관찰 당하는 걸 원치 않았다. 당연했다. 동네에는 ‘질문하고 다니는 20대 백인 남성’ 자체가 드물었다. 결국 동네를 어슬렁거리면서 안면을 트고 인간관계를 쌓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회상했다.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묘사한 1995년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론데일 지역의 환경은 2019년 6월 24일 한국일보 폭염 기획 특별취재팀이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카고=한국일보 폭염 기획 특별취재팀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묘사한 1995년 미국 일리노이주 노스론데일 지역의 환경은 2019년 6월 24일 한국일보 폭염 기획 특별취재팀이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카고=한국일보 폭염 기획 특별취재팀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의존해서도 안 됐다.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만난 사람 중 일부는 이미 95년 시카고 폭염을 그저 “유독 더운 여름”으로 치부해버리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그는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와 통계학적 수치를 조합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고 꼽았다.

폭염이 사회에 위협이 되는 이유는 단순히 극단적인 기상 재난이기 때문은 아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사회적 고립, 소통의 상실이라는 문제는 폭염이라는 기상 재난과 맞닥뜨릴 때 더욱 두드러진다”며 “이는 현재 전 세계 주요 도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 폭염 피해 당시 모습. 글항아리 제공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 폭염 피해 당시 모습. 글항아리 제공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한 건 폭염이라는 기상 요인이 아닌 사회의 소통이었다. 그가 ‘사회적 부검’이라는 방식을 통해 시카고 폭염을 분석한 이유이기도 하다.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2019년 여름, 이미 폭염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폭염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은 극단적인 기상 이변 현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립과 불평등, 이웃과의 단절 등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를 무시해왔기 때문이죠.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어려울 겁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가 마지막까지 강조한 대목은 ‘사회 기반 시설과 소통의 중요성’이었다. 소통이 부족해 의견 취합이 어려운 동네에는 기반 시설이 들어서기 어렵고, 이미 들어선 사회 기반 시설도 이용하려 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탓이다. 그는 95년 시카고 시민 739명의 죽음이 헛되지 않길 바랐다.

“모든 부검이 그렇듯, 95년 시카고 폭염에 대한 이 조사는 죽음을 연구하여 삶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삶을 보호하는 능력을 향상하고자 하는 희망과 함께 끝을 맺습니다.” 클라이넨버그 교수의 희망처럼 올여름, 우리 삶을 보호하는 능력은 전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이정은 기자 4tmr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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